미국 캘리포니아의 유명 햄버거 체인 인앤아웃은 얼마 전 불매운동을 당할뻔했다. 지난달 28일 공개된 정당 기부금 현황에서 미국 공화당에 2만5000달러(약 2800만원)를 후원한 사실이 드러나면서다. 민주당 캘리포니아주 위원장인 에릭 바우만은 트위터에 “인앤아웃을 보이콧할 때”라고 썼고, 불매운동 여론이 민주당 지지자를 중심으로 퍼져 나갔다. 그러나 인앤아웃은 지난 5월 민주당에도 5만달러를 기부한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미국에서 정치적인 문제로 홍역을 치른 기업은 인앤아웃만이 아니다. 미국 보수진영은 나이키 불매운동을 벌이고 있다. 나이키가 인종 차별에 항의하는 의미로 경기 시작 전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았던 전 미식축구 선수 콜린 캐퍼닉을 광고 모델로 썼다는 이유에서다. 스타벅스 우버 아마존도 정치적인 문제로 불매운동 대상이 됐었다.

툭하면 벌어지는 불매운동은 미국 여론이 정치 성향에 따라 극단적으로 나뉘어 있는 상황을 보여준다. 퓨리서치센터는 지난 7월30일부터 8월12일까지 미국 성인 4581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다. 응답자의 78%는 정치 성향이 다른 사람과는 ‘기초적인 사실에도 공감할 수 없다’고 답했다. 지지하는 정당이 다르면 주장이나 의견은 말할 것도 없고 사실관계에 대해서도 서로 다른 얘기를 한다는 것이다.

퓨리서치의 다른 조사에선 정부의 역할, 환경, 인종, 이민 등에 대한 공화당 지지자와 민주당 지지자의 의견 차이가 1994년 이후 가장 크게 벌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여론이 양극단으로 갈리면서 중립적이고 온건한 성향의 유권자는 감소하고 있다. 갤럽 조사에서 자신의 정치적 성향이 중도라고 밝힌 사람은 1992년 43%에서 최근 34%로 줄었다.

미국의 여론 양극화는 온갖 스캔들에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사진) 지지율이 40%대에서 안정적으로 유지되는 배경이기도 하다.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미국인들의 평가 역시 지지 정당에 따라 극단적으로 나뉜다. 올해 퓨리서치 조사에서 민주당 지지자 중 트럼프 대통령이 국정 운영을 잘한다고 응답한 사람은 7%에 불과했다. 반면 공화당 지지자는 84%가 트럼프 대통령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이런 경향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공화당 소속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은 민주당 지지자들로부터 재임 기간 평균 23% 지지를 받았다. 뒤를 이은 민주당 소속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공화당 지지자들로부터 평균 14% 지지를 얻었을 뿐이다.

여론이 극단적으로 양분된 배경으로는 여러 가지가 거론된다. 우선 경제적 불평등과 양극화가 있다. 뉴욕 연방은행은 1913년부터 2012년까지 미국의 소득 불평등과 정치적 양극화의 관계를 연구했다. 연구 결과 195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는 소득 불평등과 정치적 양극화 정도가 모두 낮았다. 그러나 1980년대부터 소득 격차가 커지면서 정치적 양극화도 심해졌다.

소셜 미디어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트위터 페이스북 등에선 자신과 견해가 비슷한 사람만 골라서 친구 관계를 맺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아예 차단할 수 있다. 그러면서 점점 더 한쪽에 치우친 생각을 하게 된다.

끼리끼리 어울리는 현상이 소셜 미디어에서만 나타나는 문제는 아니다. 닐 말호트라 미국 스탠퍼드대 경영대학원 교수가 지난해 한 실험에서 근로자들은 정치적 성향이 비슷한 상사와 일할 경우 평균 6.5% 적은 임금을 받고도 일할 용의가 있다고 답했다. 또 상품권을 판매하는 사람의 지지 정당이 자신과 같으면 구매 확률이 두 배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정치 성향이 단순히 정치 영역을 넘어 일상생활과 경제적 선택까지 좌우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다. 정치 성향이 비슷한 사람들끼리만 일하고, 물건을 사고파는 세상이 머지않아 올지도 모를 일이다. 물론 어떤 직장을 구하고, 어떤 물건을 살지는 전적으로 개인의 자유에 속한다. 하지만 특정 정당을 맹목적으로 지지하고 자신과 견해가 다른 사람을 무조건 배척하는 데 이른다면, 그것은 진정한 민주주의는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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