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롱 "안보, 美에만 의존못해"…獨외무 "美영향 안받는 금융결제망"
나토논란·무역전쟁 등으로 反트럼프 정서↑…러와 사안별 공조확대 전망
트럼프에 각 세우는 EU… 안보·경제 양쪽서 '일방주의' 제동
유럽연합(EU)이 최근 들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상대로 부쩍 각을 세우는 모습이다.

지난 7월 이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에 대한 '무임승차' 공격과 전례 없는 무역전쟁, 일방적 이란핵합의(JCPOA·포괄적공동행동계획) 탈퇴 후 동참 압박 등을 거치면서 불거진 '반(反) 트럼프' 정서가 공론화하는 양상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아메리카 퍼스트'(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우며 전통적 동맹인 자신들에 등을 돌리는 것은 물론이고 이익까지 침해하려고 한다는 판단 아래 트럼프 대통령에 맞서 외교·안보와 경제 양대 분야에서 'EU 이익 확보'를 위해 뭉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미국 쪽으로 부쩍 기울어진 '대서양 동맹 저울'의 무게추를 원 상태로 되돌려 놓으려는 시도로 해석된다.

EU의 주축 회원국인 독일과 프랑스가 선봉에 섰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27일(현지시간) 엘리제궁으로 재외공관장들을 초청한 자리에서 "유럽과 함께 전후(戰後) 세계질서를 구축한 파트너가 공동의 역사에 등을 돌리고 있는 것 같다"면서 "유럽은 더는 안보를 미국에 전적으로 의존할 수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국이 가장 민감하게 느끼는 '안보 이슈'를 정면으로 건드린 것이다.

그러면서 "유럽의 안전을 보장해야 하는 것은 바로 우리"라면서 미국을 거치지 않고 러시아와 유럽의 안보 문제에 관한 직접 대화 가능성도 열어놨다.

독일의 하이코 마스 외무장관도 가세했다.

AFP 통신에 따르면 루마니아를 방문한 마스 장관은 이날 현지 외교 관계자들과 만나 "트럼프 대통령이 러시아와 중국에 이어 유럽까지도 미국의 적으로 묘사하거나 나토에 의문을 제기할 때 당연히 우리는 짜증스럽다"고 비판했다.

마스 장관은 "'미국 우선주의'는 우리의 주의를 일깨우는 신호였다.

그에 대한 우리의 답변은 '단합된 유럽'(Europe United)이어야 한다"면서 "EU는 이름에 걸맞은 공동의 외교·안보 정책을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는 지난 21일에는 독일 경제지 기고문에서 "미국이 유럽을 희생시키는 행동을 하는 것을 허용해서는 안 된다"며 미국의 입김에서 자유로운 EU 차원의 금융 결제망과 경제 안전망을 구축할 것을 촉구한 바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일방적으로 이란핵합의에서 탈퇴한 이후 유럽에 이란과 교역·금융 관계를 단절할 것을 압박하는 상황을 타개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미국 일방주의에 대항하려는 EU의 움직임은 미국의 대 이란제재 복원 당시에도 잘 드러났다.

EU는 제재 발효 직후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과 사업하면 미국과는 못 할 것"이라는 강력히 경고했음에도 불구하고 역내 기업들에 이란과의 무역을 확대하도록 요구했다.

이어 23일에는 이란에 1천800만 유로(234억 원 상당)를 지원하기도 했다.

당시 EU 대외정책을 총괄하는 페데리카 모게리니 외교·안보 고위대표는 성명에서 "이번 지원은 경제 분야 특히 EU 회원국 국민이 직접 이득을 얻고 있는 분야의 협력관계를 확대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 마디로 미국이 독단적으로 결정하고 '나를 따르라'고 압박하더라도, EU는 회원국 국민의 이익이 침해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뜻이다.

EU가 이처럼 트럼프 대통령의 '일방주의'에 무조건 끌려가지 않겠다는 점을 공언한 만큼, 트럼프 대통령과 EU와의 경색 국면은 당분간은 계속될 전망이다.

다만 이 같은 '각 세우기'는 양 측이 서로 주도권을 잡으려는 기싸움의 성격이 있어 전면적인 대치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이런 가운데 그동안 '대서양 동맹' 하에서 상대적으로 소원했던 EU와 러시아와 관계의 경우 앞으로 사안별로 공조할 여지가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마크롱 대통령이 이날 미국을 거치지 않고 러시아와 유럽의 안보 문제에 관한 직접 대화 가능성을 열어놓은 것이나,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정상회담 후 미국의 반대에도 양국이 추진 중인 '노드 스트림 2' 가스관 공사에서의 협력을 다짐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