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팍스 아메리카나

일본 철강에 관세 부과해도
"우려스럽다" 짧게 구두 입장만
유럽도 "美와 정면대결 피해야"
일본은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2012년 취임한 뒤 모두 76개국을 방문했을 만큼 외교의 폭을 넓히는 데 공을 들이고 있다. 그렇지만 일본 외교의 중심축은 언제나 미국이다. 아베 총리는 13회에 걸쳐 미국을 찾았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 이후엔 스킨십 강화에 더 힘을 쏟고 있다. 아베 총리는 지난해 1월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한 뒤 1년8개월 동안 일곱 차례나 정상회담을 했다.

일본은 외교 전략적으로 미국과 갈등이 초래될 수 있을 법한 사안에서도 양보하는 일이 잦다. 지난 9~10일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린 미·일 각료급 무역협상에서 미 정부는 690억달러(2017년 기준)에 이르는 대(對)일본 무역적자를 거론하며 자동차와 농산물 교역을 문제 삼았다. 양자 간 자유무역협정(FTA)도 요구했다. 하지만 일본은 정면 대응을 피한 채 소극적 협상으로 일관했다. 미국의 일본산 철강·알루미늄에 대한 관세 부과 때도 일본은 “우려스럽다”는 구두 입장만 내놨다.

아베 총리는 2016년 8월 케냐에서 열린 아프리카개발회의 기조연설에서 인도·태평양 구상을 내놨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의 팽창을 저지하기 위한 일본의 이 구상을 지난해 11월 아시아태평양지역 순방 때 미국의 전략으로 채택했다. 일본이 미국의 속내를 읽고 맞춤형 전략을 내놓은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일본은 미국을 외교 최우선 순위에 두고 있지만 ‘미국 일방 노선’만을 고집하진 않는다. 미국에 협조하되 일방적으로 끌려가지 않기 위한 외교 다변화 작업도 활발히 하고 있다. 지난달 유럽연합(EU)과는 경제연대협정(EPA)을 맺었다. 일·중 평화조약 40주년이 되는 올해 10월 아베 총리는 6년여 만에 중국을 방문한다.

EU도 트럼프 대통령의 일방적인 행보가 편치 않지만 미국과 대립각을 세우는 데는 주저하는 모습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동안 파리기후협정과 이란 핵협정을 탈퇴할 때 유럽의 반대에 개의치 않는 모습을 보였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방위비 분담금 문제를 공격적으로 제기해 유럽 각국을 곤혹스럽게 했다.

하지만 장클로드 융커 EU 집행위원장은 지난달 트럼프 대통령과 만나 EU가 미국산 콩과 액화천연가스(LNG) 수입을 확대하고 관세·비관세 장벽 제거에 힘쓰기로 합의했다. 유럽은 트럼프 대통령의 일방주의 정책에 갈피를 잡지 못한 모습이지만 미국과의 정면 대결은 피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는 분석이다.

도쿄=김동욱 특파원 kimd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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