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중교통 최초로 로스앤젤레스(LA) 지하철에 탑승객의 무기 및 폭발물 소지 여부를 검색하는 이동식 전신 스캐너가 올해 안에 설치된다. 영국 스루비전이 개발한 이 기기는 9m 떨어진 곳에서도 금속·비금속 물체를 감지할 수 있고 시간당 2000명 이상을 검색할 수 있는 기능을 갖췄다. 14일(현지시간) 경찰이 폭발물 감지 기기를 시험하고 있다.
“ㅋ(크)가 하나만 있으면 ‘웃긴다’는 뜻이 아니라 다소 냉소적인 표현이에요. ㅋㅋㅋㅋㅋ 이렇게 다섯 개 이상은 붙어야 ‘진짜 웃긴다’는 얘기죠.”지난 11일 미국 로스앤젤레스(LA) 컨벤션센터 518호실. 외국인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유튜버, ‘한국언니(Korean Unnie)’ 문소현 씨가 세계 각지에서 온 200여 명의 K팝 팬들에게 메신저 용어를 설명하고 있었다. 문씨가 “‘ㅇㅇ’은 무슨 뜻인지 아세요”라고 물으니 참석자들이 너무 쉽다는 듯 “OK!”를 외쳤다.CJ ENM이 지난 10~12일 LA 컨벤션센터와 스테이플스센터에서 연 북미 최대 한류축제 ‘케이콘(KCON) 2018 LA’. 사흘간 펼쳐진 한류 콘서트와 전시·프로그램 행사에 관람객 9만4000여 명이 몰렸다. CJ가 케이콘을 시작한 2012년 이후 최다 기록이다.◆“K팝, 한국어, 웹툰 배우자”이날 LA 컨벤션센터를 찾은 관람객들은 한국 문화에 뜨거운 관심을 보였다. K팝, 한식, 웹툰 등 다양한 한국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200여 개 프로그램마다 참가자들로 북적였다. 아이돌그룹 음악에 맞춰 춤 실력을 겨루는 ‘K팝 댄스 경연대회’도 곳곳에서 펼쳐졌다.미국 펜실베이니아주에서 비행기를 타고 왔다는 갈시아 존스 씨는 “올해 세 번째로 케이콘을 찾았다”며 “다양한 K뷰티 제품을 체험해 볼 수 있어 좋았다”고 말했다.이날 오후 K팝 콘서트가 열린 곳은 미국프로농구(NBA) LA 레이커스의 홈구장인 스테이플스센터. 공연 시작 3시간 전부터 글로벌 팬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2만5000여 개 좌석이 한 시간 만에 매진됐다. 티켓 가격은 최저 60달러(약 6만8000원)에서 최고 1700달러(약 192만4000원)에 달했다.워너원, 트와이스, 모모랜드 등 인기 아이돌그룹이 무대에 오를 때마다 팬들의 함성이 공연장을 가득 메웠다. 무대 바로 옆 스탠딩존에 있는 팬들은 한국어 가사를 그대로 따라 불렀다.◆중소기업 해외 진출 통로로케이콘은 ‘한류의 모든 것’이라는 모토로 CJ ENM이 세계 각지에서 펼치고 있는 한류 축제다. 2012년 미국 캘리포니아 어바인에서 처음 시작해 미주, 아시아, 유럽, 중동 등에서 총 19차례에 걸쳐 열렸다. 한국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과 전시회, K팝 콘서트 등을 결합한 게 특징이다.글로벌 기업이 후원사로 나서면서 규모도 점점 커지고 있다. 올해 행사에는 일본 도요타자동차를 비롯해 미국 점유율 1위 보험업체인 스테이트팜 등 17개 해외 기업이 스폰서로 참여했다.CJ는 올해 행사에 중소벤처기업부, 창업진흥원, 대중소기업농어업 협력재단, 서울창조경제혁신센터 등과 협력해 국내 중소기업 78개사를 초청했다. 해외 시장 진출을 돕기 위해서다. 한국 보자기를 본떠 가방을 만드는 ‘디자인스튜디오임성묵’의 임성묵 대표는 “K팝이 인기를 얻으면서 한국 상품에 대한 관심도 늘고 있다”며 “아마존 이베이 등을 통해 미국 진출을 모색하고 있다”고 말했다.케이콘을 총괄하는 신형관 CJ ENM 음악콘텐츠유닛장은 “2012년 관람객 1만 명 규모 행사로 시작한 케이콘이 이제 세계 최대 한류 축제로 성장했다”며 “한국 문화 전파는 물론 국내 중소기업의 해외 진출도 적극 지원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CJ는 다음달 말 태국 방콕에서도 처음으로 케이콘 행사를 연다.로스앤젤레스=안정락 특파원 jran@hankyung.com
10시간의 긴 비행을 마치고 하늘을 걷던 두 발이 이곳 땅에 살포시 내려앉았다. 공항 문을 나오면 반짝이며 쏟아지는 햇빛에 기지개를 켜고 나도 모르게 숨 한 번 크게 들이마시게 되는 곳. 1년 365일이 눈부신 이곳은 ‘천사들의 도시, 로스앤젤레스(LA)’다. 로스앤젤레스는 광활한 태평양을 마주한 ‘무역의 창’이자 세계를 뒤흔드는 문화의 중심지다. 태평양의 현관인 만큼 수많은 민족이 어우러져 새로운 색을 창조해내는 이곳은 할리우드와 디즈니랜드, 베벌리힐스 등 수많은 볼거리로 사랑받는 미국의 대표도시다. 로스앤젤레스는 18세기 말 스페인 탐험가의 발견을 시작으로 멕시코 신부와 사람들이 이주하며 ‘우리 천사들의 여왕의 광장(El pueblo de Nuestra Senola la Reina de Los Angles de Porciuncula)’이라 불려왔다. 그 이후로 스페인과 멕시코의 지배를 거쳐 현재의 모습이 됐고, 긴 이름을 줄여 ‘로스앤젤레스(Los Angeles)’가 된 것이다. 수많은 인종과 문화가 섞여 새로운 색을 창조해내는 이곳 로스앤젤레스는 어떤 모습일까. 2018년을 살고 있는 LA가 궁금해졌다.로스앤젤레스=글·사진 이은비 부사무장 eblee135h@flyasiana.com가장 완벽한 피크닉, 샌타모니카그 어느 계절보다 눈부신 게 여름의 바다인데 이 맑은 하늘 아래 펼쳐진 태평양 바다의 아름다움은 오죽할까. 오늘 나의 목적지는 태평양을 허리춤에 끼우고 걷는 길이다. 로스앤젤레스 지도의 남서부 바닷가를 따라 뻗은 샌타모니카(Santa Monica) 해변에서 여행의 첫 발걸음을 뗐다.샌타모니카는 관광객뿐만 아니라 현지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휴양지다. 다운타운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해변으로 간식거리 하나 들고 자리 잡으면 완벽한 피크닉이 되고, 주말이면 눈과 귀가 즐거운 공연들로 가득 차는 곳. 누구라도 사랑할 수밖에 없는 곳이다.이른 아침부터 여유로운 햇살을 즐기는 부지런한 사람들이 해변가에 듬성듬성 자리를 잡았다. 모래알 섞인 산책로를 걷다 보니 어느새 거추장스러운 샌들은 내 두 손에 대롱대롱 매달려 쉬고 있고, 두 발은 모래에 빠질 듯 혹은 잡을 듯하며 가장 평온한 비틀거림으로 걷고 있다. 멍하니 앉아 바라만 봐도 마음이 가득해지는 바다를 마주하고 두런두런 담요 하나 펼쳐 앉은 젊은 부부와 아기, 서로를 베개 삼아 책 읽는 연인들, 태닝하며 달콤한 낮잠에 빠진 사람들. 사람들 한 명 한 명의 이야기를 들여다보고 다시금 고개 들어 키 큰 야자수와 하늘에 번갈아가며 포커스를 맞추게 하는 곳. 존재하는 모든 것이 아름다운 샌타모니카였다.샌타모니카의 진짜 보석, 샌타모니카 피어관광안내 책자를 들여다보지 않더라도 누구든 샌타모니카 해변을 걷다 보면 저 멀리 보이는 알록달록한 관람차를 향해 이끌리듯 걷게 될 것이다. 잔잔하던 샌타모니카의 바닷소리가 왁자지껄 사람들의 웃음소리, 아이들의 재잘거림으로 바뀌고 그림같이 멈춰 있던 세상이 온갖 색과 표정을 지닌 공간으로 변화한다. 새로운 세상이 시작되는 샌타모니카의 동화 속 파티장, 샌타모니카 피어(Santa Monica Pier)다.바다의 수평선을 가로질러 세워진 나무교각과 그 위 나무판자를 깔아 만든 총길이 488m에 달하는 바다 위의 파라다이스. 입구부터 신기하고 아기자기한 이곳의 상징물들로 가득 찬 선물가게와 주인들의 재능과 상상력에 반하게 하는 각종 노점, 영화 속에서 본 듯한 풍경들이 즐비한 이곳은 분명 딴 세상이었다. 길거리 음악가들은 동그랗게 사람들을 모아 세우고 팁보다는 공연료를 내야 할 것 같은 훌륭한 공연을 펼친다. 그 풍경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손발은 흥에 취해 허공에 드럼을 치고 나무 바닥을 악기 삼아 발을 구른다. 소리는 없지만 행복한 노래임이 틀림없다. 어린 손녀의 손을 잡고 나온 백발노인의 눈도 호기심과 천진난만함으로 반짝인다. 바다 위 놀이공원인 퍼시픽파크(Pacific Park)도 놓쳐서는 안 될 볼거리다. 온갖 색깔로 가득 찬 이곳은 들어서는 것만으로도 어린 시절의 추억 속으로 돌아간 듯한 설렘을 준다. 밤이면 아름답기로 소문난 일몰과 더불어 까만 배경 속에 반짝이는 퍼시픽파크도 큰 볼거리라 하니 밤의 샌타모니카도 궁금해진다.아이스크림 하나 손에 쥐고 어린아이가 된 듯 이곳저곳 둘러보다 보니 사람들이 줄지어 서서 사진을 찍는 게 보인다. 66번국도(Route66). 상점들에서도 많이 보이던 이 표지판은 미국 동부 시카고에서 시작해 이곳 샌타모니카 절벽에서 끝나는 총길이 3945㎞의 미국 최초 대륙 횡단 도로의 종착지를 의미한다. 국도로서의 역할을 다하고 역사 속으로 사라져버린 이 횡단 도로가 지금까지도 미국인들에게 추앙받는 데는 특별한 이야기가 있다. 과거 경제공황, 기후변화 등으로 흉년의 연속이던 1930년대 가난한 미국인들이 삶의 터전을 떠나 오직 희망을 찾아 오른 길이었기 때문이다. 마침내 많은 미국인들의 꿈은 이 길의 끝인 ‘햇살 머금은 도시, 캘리포니아’에서 현실이 됐다. ‘어머니의 넉넉한 품’이란 뜻의 ‘마더로드’라 불리며 이 길은 여전히 이들의 안식처이고 예술가들에게는 영감이 되는 곳으로 반짝이고 있다.나무 바닥 위를 걸을 때 나는 타닥타닥 소리에 매료돼 한 걸음 한 걸음 계속 걷다 보니 어느새 부두의 끝자락에 다다랐다. 다시금 내가 바다 위에 있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게 눈앞에 반짝이는 바다가 펼쳐졌다. 사람들의 손때가 탄 낮은 울타리에 살짝 기대 바다 냄새와 햇살로 여유를 부려본다. 누구라도 지금을 행복이라고 느끼게 하는 순간. 샌타모니카 해변 위의 갈매기들은 그저 평온한 날갯짓을 하고 있다.열정이 예술이 되는 곳, 베니스비치휴대폰 지도로 목적지에 가까워짐을 확인하기도 전에 베니스 해변(Venice Beach)에 다다랐음을 달라진 공기로 먼저 느낄 수 있었다. 화려한 그라피티로 뒤덮인 건물들은 7월의 햇빛만큼이나 뜨거운 붉은색을 입고 있었다. 바다의 푸른색을 끼얹은 듯한 건물은 여름의 열기를 식히고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 사이를 물고기처럼 피해 다니며 묘기를 부리는 얄미운 소년도 결국은 내게서 감탄의 박수를 받아냈다. 길거리에는 예술가들의 작품들이 변변치 못한 바닥에 진열되고서도 그 가치를 확실히 뽐내고 있었다. 베니스 해변의 상징과도 같은 오션 프런트 워크(ocean front walk)를 걸었다. 오션 프런트 워크의 끝에 다다랐을 때쯤 자연스럽게 고개를 들어 둘러본 풍경은 감격스러울 만큼 맑았다. 뜨거운 오후 2시의 베니스 해변은 구름 한 점 없는 하늘과 싱그럽다 못해 눈부신 잔디로 내 시야에 한 가득 들어찼다. 마치 베니스 해변을 사랑하는 누군가가 밤새 입김을 불어 옷깃으로 닦고 또 닦은 것처럼 투명하다.잠시 행복에 겨워 멍하니 바다를 보던 중 시멘트바닥을 미끄러지는 둔탁하고 뜨거운 마찰음이 직선과 곡선을 그으며 흩어졌다. 해변에 있는 스케이트보드 연습공간에서 나는 소리였다. 작은 나무 판자 위에 자신을 맡긴 젊은이들의 눈빛은 날카로웠다. 보드 위의 예술가들은 무릎의 상처쯤은 전혀 두렵지 않은 듯 가파른 조형물을 넘어 날아올랐다.저 멀리 서퍼들은 끝도 없이 펼쳐진 태평양 바다 위를 활보하는 전사가 되어 파도를 지휘한다. 함께 숨쉬는 것만으로도 심장을 뜨겁게 만드는 곳. 베니스 해변의 진짜 매력은 눈이 아닌 가슴으로 느껴야만 한다.오늘의 LA를 만나다, 애벗키니1905년 미국의 대부호 애벗 키니(Abbot Kinney)는 LA에 이탈리아 베니스(베네치아)만큼이나 아름다운 곳을 만들고 싶었다. 그는 4개의 수로로 이뤄진 작은 운하를 만들고 베니스풍 주택들을 지어 이곳을 베니스커낼(Venice Canal)이라 이름 붙였다. 교통수단이 부족했던 과거에는 베니스처럼 곤돌라를 운용하며 LA 속 작은 베니스를 재현하기도 했으나 현재는 고급주택가와 잘 정비된 예쁜 마을로 LA의 작은 명물이 됐다. 지금은 베니스 해변을 둘러본 관광객들에게 한 템포 쉬어가는 산책로 정도로 사랑받고 있다. 해변가에서 걸어서 15분 정도 거리에는 그의 이름을 딴 ‘애벗키니’가 펼쳐진다. 베니스 해변의 화려함을 경험했다면 애벗키니의 감성을 느끼러 가보자.애벗키니 거리는 LA 젊은이들이 가장 사랑하는 거리로 급부상하고 있다. 좁은 도로를 끼고 펼쳐진 야자수 나무 아래로 오밀조밀 낮은 건물들이 늘어선 이 거리는 자유와 낭만이 가득하다. 베니스 해변의 예술가들이 각자의 색을 담아 모이기 시작한 이 거리는 독특하고 빈티지한 상점들과 감각적인 거리예술로 가득 찼다. 길거리 시멘트 벽은 예술가들이 자유롭게 표현한 벽화로 야외 전시장을 만들었다. 그 중 유명한 몇몇의 벽화 앞에는 관광객들이 눈치껏 줄을 서 사진을 찍는 진풍경도 만날 수 있었다. 분위기 때문일까? 나란히 세워진 자전거 몇 대의 정갈함마저 사랑스럽다.애벗키니 거리가 특별한 또 하나의 이유는 바로 ‘맛’이다. 커피 마니아라면 반가워할 스페셜티 커피 브랜드 ‘인텔리젠시아(Intelligentsia)’와 ‘블루보틀(blue bottle)’은 역시나 문전성시를 이룬다. 그저 커피 맛이 좋아 오는 사람들은 물론 독특하고 감각적인 인테리어에 반해 온 사람들도 적지 않다. 나도 그중 하나였다. 커피를 주문하기도 전부터 마음에 담아둔 그늘진 야외 의자에 자리를 잡고 커피를 한 모금 마시니 행복한 한숨이 새어 나왔다. 커피를 사러 간 주인이 가로수에 묶어둔 덩치 큰 개도 햇살이 좋은지 얌전히 앉아 꼬리를 흔든다. 커피뿐만 아니라 소금맛 아이스크림인 솔트앤드스트로나 미국에서 가장 맛있는 도넛이라 불리는 블루스타도넛 등도 만날 수 있다. 매월 첫째주 금요일에는 LA에서 가장 맛있다는 푸드트럭 이벤트가 열린다고 하니 이 또한 놓치기 아깝다.뜨겁던 태양이 살짝 비켜서고 그 눈부시던 LA의 하늘이 짙푸른 빛을 품었다. 똑같은 태평양을 끌어안은 LA의 해변이지만 그 둘은 분명 다른 색깔이었다. 샌타모니카의 해변에서 순수한 어린아이가 돼보고 베니스 해변에서 열정의 두근거림을 맛본 하루가 야자수의 머리 위로 느릿느릿 넘어간다.여행정보아시아나항공은 인천~LA 구간을 매일 하루 두 편 운항하고 있다. 샌타모니카로 가는 방법은 택시가 가장 보편화돼 있다. 지하철을 탈 때는 다운타운 샌타모니카역에서 하차하면 된다. 샌타모니카에서 베니스비치까지는 도보로 갈 수 있으며 샌타모니카 정류장에 모여 있는 자전거 렌털숍에서 자전거를 대여하는 것도 좋다. 자전거의 하루 렌털비용은 평균 40~45달러, 1시간 15달러, 2시간 30달러다. 밤의 베니스비치는 위험할 수 있으니 낮에 방문할 것을 추천한다.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 있는 전통시장 파머스마켓 입구에는 ‘3번가와 페어팩스 애비뉴 모퉁이에서 만나요(Meet me at third and Fairfax)’라고 쓰인 조형물이 있다. LA 시민들이 이곳에 자리 잡은 파머스마켓 앞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잡는다는 걸 보여주는 문구다.개장한 지 84년 된 파머스마켓은 9만2900㎥ 넓이 복합쇼핑몰 ‘더 그로브’와 붙어있다. 대형 백화점 2개와 유명 브랜드 플래그십 매장, 체인 레스토랑 등이 시장 옆에 들어섰다. 전통시장 반경 1㎞ 이내 대형 유통업체 출점이 금지된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풍경이다. 미국 도시부동산 연구단체인 ULI(Urban Land Institute)는 보고서에서 파머스마켓과 더 그로브가 서로 시너지를 일으켜 LA의 대표적인 랜드마크 역할을 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복합쇼핑몰이 전통시장 영업을 어렵게 한다는 일부 인식을 뒤집는 사례다.“낙후된 전통시장 살려라”파머스마켓은 1934년 석유 시추지였던 공터에서 농부들이 트럭에 농산물을 싣고 와 팔기 시작하면서 생겨났다. 지역 주부들이 찾아오면서 시장이 번창하자 땅 소유주인 길모어 가문은 같은 해 목조 건물로 상가를 지어 파머스마켓을 정식 개장했다. 1952년 시장 근처에 CBS 방송국이 들어서면서 이곳을 찾는 발길이 더 늘었다. 마릴린 먼로, 엘비스 프레슬리도 파머스마켓 단골이었다. 미국 밴드 비치보이스의 노래 가사에도 이 시장이 등장한다.여느 전통시장처럼 이곳도 1980년대 중반부터 쇠락하기 시작했다. 소비자들은 전통시장 대신 월마트 등 쇼핑하기 편하고 쾌적한 대형마트로 향하고 있었다. 길모어 가문은 파머스마켓을 허무는 방안을 검토하기까지 했다. 전통시장을 지키면서도 방문객을 늘릴 수 있는 대책이 필요했다. 부동산 개발사 여러 곳이 개발계획을 제시했다. 이후 1998년 길모어 가문과 부동산 개발사 카루소가 협업해 공사비 1억달러 규모 복합쇼핑몰 건설 계획을 발표했다. 길모어 가문 부지를 카루소가 장기 임차해 쇼핑몰을 운영하는 형태였다. 개발 계획이 나오자 전통시장의 역사적 가치가 훼손될 수 있다는 지적도 있었다. 일부는 교통체증을 걱정하기도 했다.LA시는 복합쇼핑몰이 교통체증과 스모그를 유발할 수 있다는 교통국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복합쇼핑몰 개발 프로젝트를 승인했다. 복합쇼핑몰이 지역경제에 가져다줄 과실이 더 크다고 봤기 때문이었다. 쇼핑몰이 들어서는 페어팩스 구역 도로를 넓히고, 민간 부지에도 새롭게 도로를 깔면 교통체증을 완화할 수 있다는 대안까지 내놨다.쇼핑몰이 소비자 발길 되돌려시장 상인들도 반대하지 않았다. 카루소가 “파머스마켓의 역사 문화 가치를 보전하고, 파머스마켓 정신을 이어받아 야외공간을 디자인하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이었다. 카루소는 주민들과 회의를 열어 주민들의 의견도 개발계획에 반영했다. 주민들이 오가며 이용할 수 있는 서점, 은행 등의 시설을 들이기로 했다.2002년 문을 연 더 그로브는 경쟁업체인 베벌리힐스 타운 등 쇼핑센터보다는 규모가 작았지만 다른 복합쇼핑몰에서 볼 수 없는 독특한 분위기 덕에 인기를 끌며 세계적 관광지가 됐다. 쇼핑몰 가까이 전통시장이 있어 신선한 지역 농·축산물과 장인들의 수공예품, 향토음식점 등 특색 있는 콘텐츠를 갖춰서였다. 개장 첫해 더 그로브 매출은 당초 목표보다 제곱피트(0.09㎥)당 500달러씩 더 나왔다. 상가 공실률은 0%를 유지하고 있다.파머스마켓도 더 그로브 덕을 봤다. 더 그로브가 쇼핑몰에서 시장까지 이동하는 차량을 운영하면서 쇼핑몰 방문객들이 자연스레 파머스마켓까지 둘러보게 된 것. 1990년대 후반 600만 명이었던 파머스마켓 연간 방문객 수는 더 그로브가 개장한 뒤 1800만 명으로 늘었다.시장 규모 역시 커졌다. 34곳이었던 파머스마켓 입점 가게 수는 100곳 이상으로 증가했다. 파머스마켓의 한 상인은 “과거 주말 점심시간대에만 방문객이 몰렸지만 쇼핑몰이 생긴 뒤로 저녁에도 사람이 많다”고 했다.로스앤젤레스(LA)=이수빈 기자 ls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