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가 최근 터키 금융위기가 1998년 아시아 외환위기와 비슷하다고 진단했다. 막대한 외화 부채로 부풀려진 버블이 터지고 있다는 점에서다. 터키 리라화 폭락 사태의 불똥은 경제 펀더멘털이 취약한 신흥국으로 번지며 아르헨티나, 인도, 브라질, 중국 등의 통화가치가 동반 추락하는 모습이다.

크루그먼 교수는 13일(현지시간) 트위터를 통해 “터키가 과거 인도네시아, 태국, 아르헨티나에서 발생했던 금융위기를 재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경제기초가 약한 신흥국에선 위기 조짐이 보이면 자금이 빠져나가 통화가치가 하락하고, 이로 인해 외화 부채가 더 불어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했다.

크루그먼 교수는 1998년 아시아 외환위기 직전 인도네시아와 태국 등이 모두 이 같은 상황이었다고 지적했다. 터키의 외화 부채는 4600억달러로 국내총생산(GDP)의 55% 수준이다. 터키 리라화는 지난 10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터키산 철강과 알루미늄에 두 배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발표한 이후 2거래일 동안 20% 이상 하락했다. 터키 중앙은행이 13일 시장 안정화 조치를 발표했지만 자금 유출은 계속되고 있다.

리라화 쇼크는 다른 신흥국 통화가치의 연쇄 하락을 부르고 있다. 아르헨티나 페소화 환율은 달러당 30페소를 찍어 가치가 사상 최저로 떨어졌다. 지난 6월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을 받으며 안정됐던 페소화는 하루 만에 2% 넘게 하락했다. 아르헨티나 중앙은행은 13일 기준금리를 연 40%에서 연 45%로 전격 인상했다.

인도 루피화 가치도 14일 사상 최저 수준으로 추락했다. 루피화의 달러 대비 환율은 처음으로 70달러를 돌파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랜드화도 2년 만에 최저치를 보이고 있다. 중국 위안화 고시환율은 달러당 6.86위안으로 1년여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다. 인도네시아 루피아화와 브라질 헤알화도 각각 전날 대비 0.7%와 0.5% 떨어졌다.

설지연 기자 sj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