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을 앞세운 최강국 미국의 공세에 중국과 러시아, 터키, 이란이 줄줄이 휘청이고 있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이 취임한 뒤 미국과 삐걱거리는 모습을 보여온 터키는 최악의 상황이다. 외환시장 불안이 최고조에 달한 터키에서 보듯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일방통행식 질주엔 한층 강해진 달러화 영향력이 자리잡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 10년간 지속된 양적완화로 달러 공급이 급증했고 그만큼 세계 경제 전반에 달러화의 영향력은 커졌다.
"美에 맞서지 말라"… '달러 파워' 앞세운 트럼프 강공에 주요국 흔들
터키 경제가 취약해진 건 달러 빚이 급증해서다. 달러가 싼 시기에 쉽게 조달했지만 미국이 돈줄을 죄자 달러 빚 부담이 눈덩이처럼 불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터키는 다른 주요 신흥국보다 외화 부채에 더 의존하고 있다”며 “미국 투자자들은 터키 채권의 25%, 터키 상장 주식의 절반 이상을 갖고 있다”고 보도했다.

우방이자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으로 가깝던 미국과 터키가 다툼을 벌이는 데는 시리아 내전이 원인이 됐다. 미국은 시리아의 쿠르드반군을 지원했지만 터키는 자국 내 쿠르드족 세력 확대를 우려해 러시아와 손잡고 정부군을 돕고 있다. 터키는 NATO의 반대에도 미국 패트리엇 미사일 대신 러시아의 방공미사일 S400을 도입했다. 게다가 2016년 10월부터 앤드루 브런슨 목사를 간첩죄 등으로 장기 구금해 도화선에 불을 붙였다.

브런슨 목사 석방을 요구해온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일 터키 법무장관과 내무장관의 미국 자산을 동결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즉각 보복을 지시했다. 10일엔 리라화 폭락을 ‘경제 전쟁’으로 규정하고 “보유한 달러나 유로, 금을 리라로 바꾸라”고 국민에게 호소했다. 미국은 터키에 제공하던 일반특혜관세제도(GSP)도 들여다보고 있다. 자격을 박탈하면 17억달러(약 1조9000억원) 규모의 특혜가 사라진다.

블라디미르 푸틴의 러시아도 트럼프의 공세에 흔들리고 있다. 지난 4월 2016년 대선 개입을 이유로 경제 제재를 단행한 미국은 이달 8일엔 러시아가 생화학무기인 노비촉으로 영국에서 이중간첩 암살을 시도했다는 이유로 추가 제재를 발표했다. 루블화는 이달 들어 6%가량 급락했다. 올해 하락률은 15%가량이다. 미국은 금융 제재 등 더 강력한 추가 제재를 준비하고 있다.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총리는 “은행 운영 및 화폐 사용 금지와 같은 조치가 뒤따르면 경제전쟁 선포로 간주할 것”이라고 경고했지만 칼자루는 미국이 쥐고 있다.

이란도 미국이 7일 1차 경제제재를 재개하자 벼랑 끝으로 몰리고 있다. 이란 리알화 가치는 미국이 핵 협정을 탈퇴한 5월 이후 70% 넘게 급락했다. 일부 식료품 가격은 50% 이상 올랐고,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은 2016년 4분기 16.8%에서 올해 1분기 2.7%로 낮아졌다. 이란은 11월이면 원유 수출까지 막힐 처지다.

관세 폭탄을 맞은 중국도 비상이다. 중국 상하이와 선전 우량주를 모은 CSI300지수는 미국이 처음 관세를 때린 지난 3월22일부터 이달 10일까지 15.31% 떨어졌다. 같은 기간 위안화도 8.34% 하락했다. 중국은 1998년 이후 20년 만에 처음으로 올 상반기 283억달러의 경상수지 적자를 냈다. 중국 경제전문가인 쉬이미아오는 10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기고한 칼럼에서 “미국과의 무역전쟁에서 패배를 인정하자”고 촉구했다.

미국은 지난 1일 2000억달러 상당의 중국산 수입품에 대한 관세율을 애초 계획한 10%가 아니라 25%를 매기는 방안을 발표해 중국을 충격에 빠뜨렸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들어선 시진핑 중국 주석을 ‘친구’라고 부르지 않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휘두르는 전가의 보도는 관세와 제재다. 트럼프 정부 첫해에만 1000명에 달하는 개인 및 기관이 제재 대상에 올랐다. 워싱턴포스트는 버락 오바마 행정부 첫해보다 3배가량 많은 수치라고 전했다.

뉴욕=김현석 특파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