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아라비아가 인권 운동가 석방을 요구한 캐나다 정부에 격분해 외교관 추방, 유학생 철수, 캐나다 국채 매각 등 무차별 공세를 펴고 있다.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사진 왼쪽)가 9일 “국내든 해외서든 인권 문제를 단호하게 이야기하겠다”고 밝히면서 양국 간 갈등이 고조되는 양상이다.

사우디와 캐나다의 갈등은 지난 3일 리야드 주재 캐나다 대사관이 트위터에 “사우디 정부는 최근 체포한 사마르 바다위(37)와 시민운동가들을 석방해야 한다”는 게시물을 올리면서 촉발됐다. 바다위는 2012년 미국 국무부의 ‘용기 있는 여성상’을 받은 인권 운동가다. 함께 수감된 동생 라이프 바다위의 부인이 캐나다인이다.

사우디 정부는 즉각 “노골적인 주권 침해 행위”라며 초강경 대응에 나섰다. 이틀 뒤 사우디 주재 캐나다 대사를 추방했고 캐나다 주재 자국 대사도 소환했다. 이어 캐나다에 대한 신규 투자와 무역 거래를 동결했고 캐나다에 있는 유학생도 다른 나라로 이동시킬 것이라고 밝혔다. 오는 13일부터는 국영 사우디항공의 토론토 노선도 전면 중단하기로 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사우디 중앙은행과 국가연금기금이 보유한 캐나다 부동산과 채권 등을 비용과 관계없이 처분하기로 했다.

\캐나다 정부는 외교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 미국과 영국, 아랍에미리트(UAE) 등에 중재를 요청했지만 미국은 개입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사우디 외교부 장관은 “중재할 것도 없는 문제”라며 사과를 요구하고 있고 다른 동맹국들도 나서지 않고 있다.

사우디가 격앙된 반응을 보이는 데 대해선 분석이 엇갈리고 있다. 알자지라방송은 “사우디가 2016년 캐나다로부터 110억달러 규모의 경장갑차 도입 계약을 맺는 등 호의적으로 대했지만 캐나다가 지속적으로 인권 문제를 제기하자 폭발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나 영·미 언론과 중동 일각에선 이란과 시리아 문제 등으로 미국 정부의 지지를 받는 무함마드 빈살만 사우디 왕세자(오른쪽)가 주변국을 상대로 본보기를 보이는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네이더 하시미 덴버대 중동연구센터장은 “2015년 권력을 잡은 빈살만 왕세자는 예멘 내전에 개입하고 카타르를 고립시키는 등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등에 업고 거침없이 행동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정치적 입지를 높이기 위해 주변국 등에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현일 기자 hiunea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