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황에 월급 늘어도… 지갑 안 여는 日 소비자
일본 경제가 좀체 소비 부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고용과 투자, 기업 실적 등 거의 대부분 경제지표가 호조세지만 소비만은 마이너스 행보를 거듭하고 있다.

일본 후생노동성은 종업원 5인 이상 기업에 다니는 직장인의 올해 6월 명목임금이 전년 동월 대비 3.6% 증가한 44만8919엔(약 453만원)으로 나타났다고 7일 발표했다. 11개월 연속으로 수입이 늘었다. 물가 등을 고려한 실질임금은 전년 동기 대비 2.8% 증가했다.

하지만 이 같은 급여 증가에도 불구하고 가계 소비는 좀처럼 살아나지 않고 있다. 총무성이 이날 발표한 2인 이상 가구의 소비지출은 평균 26만7641엔(약 270만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2% 줄었다. 2월 이후 5개월째 마이너스다. 총무성은 “생활에 꼭 필요한 지출 외에는 가급적 소비를 자제하는 경향이 강하게 유지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처럼 소득 증가에도 불구하고 일본 소비자들이 계속해서 지갑을 닫은 이유로는 미래에 대한 불안이 우선 지적된다. 그동안 일본의 소비를 이끌어온 주체는 ‘액티브 시니어’로 불린 800만 명의 베이비붐 세대(1947~1949년생)였다. 하지만 이들이 70대에 접어들면서 노후 불안으로 본격적인 긴축 모드에 들어섰다는 분석이 많다.

지난해 70세 이상 세대주 가구의 평균 저축액은 2358만엔(약 2억3800만원)으로 일본 전체 평균 1812만엔(약 1억8300만원)을 크게 웃돈다. 또 소수 고액 자산가를 제외하면 실제 여유자금은 그리 많지 않아 소비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젊은 층도 이전 세대와 달리 ‘절약 지향’이 강하다. 성장기에 ‘잃어버린 20년’을 경험한 탓에 소비에 큰 의욕을 보이지 않는 ‘사토리 세대(득도한 세대)’가 늘고 있다. 일본이 장기간 디플레이션(물가 하락)을 경험하면서 소비자들이 ‘100엔숍’ ‘유니클로’와 같은 중·저가 제품 위주의 소비에 익숙해지면서 약간의 가격 인상에도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지적도 있다. 유통업체 마루에쓰의 우에다 마코토 사장은 “일반 소비재에서 고가 상품이 팔리지 않는 경향이 점점 강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온라인 거래와 중고시장이 활성화돼 새 제품 소비를 억제하고 있는 점도 소비 개선의 발목을 잡고 있다. 의류와 잡화, 어린이용품을 중심으로 한 일본 중고시장 규모는 2015년 1조1000억엔(약 11조1137억원)에서 지난해 2조1000억엔(약 21조2171억원)대로 커졌다.

도쿄=김동욱 특파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