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자동차 배기가스 규제를 대폭 완화하기로 했다. 전임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매년 강화하기로 했던 승용차와 소형트럭 연비 기준을 2020년 이후 동결키로 한 것이다. 지난해 파리기후협약 탈퇴에 이어 기후 변화와 관련해 또 하나의 ‘오바마 정책 뒤집기’로 해석된다.

월스트리트저널 등에 따르면 미 교통부와 환경보호청(EPA)은 2일(현지시간) 신차에 적용될 연비 기준을 2020년부터 2026년까지 갤런당 37마일(약 15.7㎞/L)로 동결키로 했다. 새 지침은 60일의 의견 청취 기간을 거쳐 시행될 예정이다.

오바마 행정부는 기후 변화 대응책의 하나로 2012년 기업평균연비규제(CAFE)를 발표했다. 미국에서 판매되는 신차의 평균 연비를 2025년까지 갤런당 50마일(약 21.3㎞/L)로 높이고, 이를 달성하지 못하는 기업엔 벌금 형태의 세금을 부과하는 것이 핵심이었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가 이를 뒤집으면서 2026년까지 갤런당 37마일의 연비만 유지하면 벌금을 물지 않게 됐다. EPA는 “(전 정부가) 정치적 편의를 위해 연비를 높이는 기간을 지나치게 짧게 잡는 바람에 배기가스 기준이 너무 높게 설정됐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선거 때부터 연비 규제를 완화하겠다고 강조했다. 과도한 연비 규제로 자동차 제조사들이 막대한 개발비 부담을 안게 됐으며, 이에 따른 비용이 소비자에게 전가돼 차량 구매를 위축시킨다고 비판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번 규제 완화가 자동차업계의 제조원가를 낮추고 신차 구매와 휘발유 소비를 촉진하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다만 배기가스를 줄이려는 국제적인 추세에 미국이 역행한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전기차 보급이 늦어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환경 관련 규제가 엄격한 캘리포니아주 등 일부 주정부와 연방정부 간 법적 다툼 가능성도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캘리포니아주에 대해 자체 연비 기준을 적용할 권한을 빼앗겠다고 했다. 미국 19개 주 법무당국은 연방정부의 배출가스 규제 완화에 반대해 소송을 제기하겠다고 밝혔다.

설지연 기자 sj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