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가 신(新)아시아 정책인 인도·태평양 전략을 구체화하기 시작했다. 미 정부는 30일(현지시간) 내놓은 ‘인도·태평양 비전’을 통해 1억1300만달러(약 1262억원) 규모의 초기 투자펀드를 조성해 아시아 개발도상국에 기술과 에너지를 지원하고 사회기반시설 건설도 돕기로 했다. 인프라 사업 지원금을 미끼로 아시아 주변국들을 옭아매고 있는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 육상·해상 실크로드) 전략을 정면으로 겨냥한 것이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이날 미국 워싱턴DC 상공회의소에서 열린 ‘미국의 인도·태평양 경제 비전 포럼’ 기조연설에서 이 같은 계획을 발표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이 기금은 미국이 인도·태평양 지역의 번영에 기여하겠다는 계약금 성격”이라고 말했다.

미·중 통상전쟁이 한창인 가운데 미국이 이 같은 청사진을 공개한 것은 중국의 패권주의에 제동을 걸겠다는 의지를 명확히 한 것이라고 로이터통신은 전했다. 중국은 일대일로 사업으로 올 상반기에만 55개국에 76억8000만달러(약 8조5800억원)를 직접 투자했다. 지금까지 진행한 총사업 규모는 1000억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융자 지원을 받은 국가가 부채를 상환하지 못하면 중국이 인프라 운영권을 차지하는 등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 등 정치·군사적 목적으로 이용하고 있다.

폼페이오 장관은 미국의 투자는 중국의 일대일로와 성격이 다르다고 강조했다. 그는 “미국은 결코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지배를 추구하지 않을 것이며 이를 추구하는 어떤 나라에도 반대할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일본과 호주도 미국의 아시아 개발계획에 동참한다는 방침이다.

한편 이날 폼페이오 장관은 일대일로 관련 채무로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을 논의하는 파키스탄과 관련해 “IMF는 (채권자 중국에 자금이 흘러들어가기 때문에) 파키스탄을 지원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이어 “미국은 최대 출자국으로서 IMF의 행동을 주시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이현일 기자 hiunea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