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의무송환세 신설로 미국 영주권이나 시민권을 가진 기업인과 2, 3세 자녀들의 세무 리스크가 커지고 있다. 미 정부가 작년 말 세제 개편을 통해 송환세를 도입하고 과세 대상이 되는 특정외국법인(CFC) 기준을 확대한 데 따른 것이다. 한국에 본사를 둔 미 영주권 및 시민권자가 미국, 중국 등에 자회사를 설립해 운영할 경우 송환세를 내야 할 수도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6일 KPMG 미국 본사에 따르면 미국 영주권·시민권을 가진 한국 기업인 가운데 일부는 미 정부 규정에 따라 송환세 보고와 납부 의무가 새로 발생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송환세 도입은 작년 말 트럼프 행정부 세제 개편의 핵심이다. 미국은 지난해 세제 개편을 통해 미국인이 해외에서 벌어들인 소득에까지 세금을 매기는 ‘월드와이드 과세 체계’를 포기하고 앞으로는 미국에서 번 돈에만 과세하는 ‘속지주의’로 전환했다.

하지만 애플 등 미 기업들이 1987년부터 작년까지 세금을 내지 않고 쌓아온 2조달러 이상의 이익잉여금 처리가 필요했다. 미 정부는 미국으로 송금하면 법인세율(21%)보다 낮은 15.5%의 저율 세금만 매기기로 하고 송환세를 만들었다.

문제는 송환세가 미 기업뿐만 아니라 미국 개인주주에게도 적용된다는 것이다. 여기엔 한국인이지만 미 국적이나 영주권을 가진 기업인과 자녀 등도 포함된다. 이들이 한국 회사 지분의 50% 이상을 가진 경우 그 회사는 특정외국법인으로 분류되고, 해당 기업 지분의 10% 이상(직계가족 합계)을 가진 모든 미국 주주는 송환세를 내야 한다. 지분율 규정 등을 고려할 때 대기업보다는 비상장 중소·중견 기업인이 송환세 리스크에 노출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온다.

송환세 대상인 특정외국법인 범위도 대폭 확대됐다. 미국 세법은 그동안 미국 주주가 보유한 지분의 총합이 50%를 넘는 해외 법인만 특정외국법인으로 간주했다. 이런 법인의 주식을 10% 이상(직계가족 합계) 가진 미국 주주에겐 회사 이익 중 이자 등 일부에 한해 지분만큼 배당된 것으로 보고 과세해 왔다.

하지만 작년 세법 개정에서 특정외국법인을 판단하는 지분율을 산출할 때 ‘하향 귀속(downward attribution)’ 규정이 도입됐다. 미국 법인의 해외 모회사(한국 본사)가 50% 넘게 출자해 세운 자회사도 특정외국법인으로 분류하도록 한 것이다.

미국 영주권을 가진 기업인이 경영하는 한국 기업(지분율 30%)이 100% 출자한 중국 생산법인과 미국 판매법인을 거느리고 있다고 가정하면, 기존엔 특정외국법인으로 분류되지 않았던 중국법인도 특정외국법인으로 간주돼 과세 근거가 된다. 중국 및 미국법인의 실제 지배자인 미국 주주가 중간에 한국 기업을 끼워 넣어 탈세하려 했다고 보는 것이다. 이에 따라 중국법인에서 1986년부터 발생한 이익잉여금에 대해 미국에 송환세를 내야 한다.

미 국세청(IRS)은 오는 10월15일까지 송환세 신고를 받고 있다. KPMG 관계자는 “미 영주권이나 시민권을 가진 중소·중견기업인 중에는 트럼프 행정부의 세제 개혁에 엉뚱하게 휘말리는 사례도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의무송환세

repatriation tax. 애플 등 미국 기업의 대규모 해외 이익잉여금을 본국으로 송금하도록 하기 위해 만든 세제. 올해까지 송금하면 법인세율(21%)보다 낮은 15.5% 세율을 적용한다.

뉴욕=김현석 특파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