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탄대로를 걷던 서른 살의 회사원이 돌연 퇴사를 결심했다. 창업하고 싶어서였다. 주변 사람들은 그의 선택에 의아해했다. 일본 3대 명문 국립대인 히토쓰바시대를 졸업하고 3대 은행인 일본흥업은행(현재 미즈호은행)에 취업해 엘리트 직장인의 길을 걷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일본 청년이라면 누구나 원하던 ‘스펙’을 한 번에 걷어찬 셈이다.

정해진 길만 잘 걸어도 그는 성공한 비즈니스맨이 될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일본 사회도 명문 대학을 졸업한 뒤 좋은 회사에 들어가 촉망받는 직장인으로 성장하는 것을 높게 평가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그는 30여 년간 만들어온 기반을 모두 버리고 빈손으로 창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그가 바로 아마존 재팬, 야후 재팬과 함께 일본 3대 전자상거래 업체로 꼽히는 라쿠텐을 일군 미키타니 히로시 회장(53)이다. 미키타니 회장은 “돈과 지위를 잃는 것보다 더 큰 리스크는 인생을 후회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일러스트=전희성 기자 lenny80@hankyung.com
일러스트=전희성 기자 lenny80@hankyung.com
기업가정신에 매료돼

미키타니 회장이 창업을 결심한 계기는 미국 유학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1991년 직장 연수로 하버드대 경영전문대학원(MBA)에서 공부했다. 이 시절 그는 일본과 다른 미국의 사회 분위기에 큰 충격을 받았다.

기업가정신과 창업이 당연시됐던 미국에선 도전정신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 회사원이나 공무원으로 출세하는 것보다 자신만의 아이디어로 새로운 사업을 개척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했다.

이 시절 경험은 훗날 미키타니의 도전에 불씨가 됐다. 그는 일본으로 돌아와 인수합병(M&A) 관련 업무를 맡으며 창업의 꿈을 키웠고, 1995년 본격적인 창업에 나서기 위해 사직서를 냈다.

그는 컨설팅그룹 창업을 거쳐 1997년 인터넷 쇼핑몰에 도전했다. 작은 원룸에서 6명의 직원, 서버 1대로 라쿠텐을 시작했다. 미국에서 아마존이 막 서비스를 시작했고, 구글은 존재하지도 않았을 때였다. 그는 이베이와 아마존처럼 판매자와 소비자를 연결하는 플랫폼을 만드는 사업을 구상했다.

일이 처음부터 잘 풀린 것은 아니었다. 당시 일본에선 인터넷 쇼핑이 활성화되지 않았다. 게다가 후지쓰, NEC 등 대기업들이 시장을 장악하고 있었다. 라쿠텐의 설립 첫 달 매출은 10만엔(약 100만원)에 그쳤다.

일본 대표 ‘괴짜 기업인’

미키타니는 기존에 시장에 진입한 2500여 개 인터넷 쇼핑몰을 전수 조사했다. 기존 업체의 문제점을 파악해 시장 점유율을 높일 방안을 찾기 위해서였다.

그는 일본 인터넷 쇼핑몰 대다수가 입점료가 너무 높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입점 업체들은 한 달에 100만엔의 수수료를 내야 했다. 판매 절차와 관리가 복잡하다 보니 입점 업체들은 상품을 자주 바꾸지도 않았다.

그는 이 점을 파고들어 역전의 발판을 마련했다. 입점 수수료를 20분의 1인 월 5만엔으로 확 낮추고 입점 업체가 각자 상품을 인터넷에 표시할 수 있도록 했다. 라쿠텐 플랫폼을 이용하는 입점 업체와 소비자 시각에서 서비스를 바꾼 것이다. 이는 현재 인터넷 쇼핑몰과 거의 비슷하다. 미키타니는 하루 15시간씩 주6일간 근무하면서 입점 업체들을 끌어들였고 대기업 사이트를 하나둘 넘어섰다.

라쿠텐은 이 같은 과정을 거쳐 2000년 일본 신흥기업 증시인 자스닥에 상장했다. 2005년에는 1만5000개의 입점 업체, 연간 4000억엔어치의 물품을 거래하는 일본 대표 전자상거래 업체로 발돋움했다. 지난해 매출은 9444억7400만엔(약 9조5000억원)으로 전년도 7819억1600만엔보다 20%가량 증가했다. 순이익은 2016년 384억3500만엔에서 지난해 1104억8800만엔으로 세 배 가까이 뛰었다.

라쿠텐 본사에는 사무실 곳곳에 미키타니 회장이 주창하는 ‘성공의 다섯 가치 원칙’이 적혀 있다. 이 원칙은 △항상 개선하고 전진하라 △열정적인 전문가가 돼라 △가설을 세우고 실행·증명한 뒤 시스템화하라 △고객 만족을 극대화하라 △빠르게, 빠르게, 빠르게 등이다.

라쿠텐은 또 어떤 일도 해내고야 말겠다는 기업가정신을 ‘라쿠텐주의’로 명명해 회사의 근간으로 삼고 있다. 모두 미키타니 회장이 창업할 때부터 지금까지 겪은 과정과 경험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경영 원칙이다.

끊임없는 도전

라쿠텐은 일본인들의 일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기업이 됐다. 쇼핑몰, 금융, 미디어, 스포츠 등 다양한 업종에서 영향력을 발휘하는 거대 기업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미키타니의 도전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일본 3대 전자상거래 업체에 만족하지 않고 공격적인 M&A로 전 세계 시장에 뛰어들어 세계를 놀라게 했다. 2014년 10억달러를 투자해 미국의 온라인 리베이트 업체인 이베이츠를 인수한 게 대표적이다. 이어 최근 몇 년간 미국의 바이닷컴, 영국의 플레이닷컴 등을 인수하며 유통업계의 ‘큰손’으로 자리 잡았다. 2014년에는 인터넷 전화서비스 업체인 바이버에 9억달러를 투자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이동통신 사업에 뛰어들었다. 라쿠텐은 일본 총무성으로부터 주파수를 할당받아 일본 내 네 번째 이동통신 업체가 됐다. 내년 10월부터 서비스를 시작한다. 2014년부터 알뜰폰 사업으로 축적한 150만 명의 가입자를 바탕으로 모바일 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것이다. 기존 일본 이동통신 3사도 라쿠텐 등장에 긴장하고 있다. 라쿠텐은 이 밖에 드론(무인항공기) 사업, 라쿠텐 코인, 인공지능(AI) 플랫폼 등 신사업도 꾸준히 추진하고 있다.

미키타니 회장은 유니클로 창업자 야나이 다다시, 교세라 창업자 이나모리 가즈오 등과 함께 안정을 우선으로 하는 일본 사회 분위기에 반기를 든 일본의 대표적인 경영인으로 꼽힌다. 일본 내에서는 ‘괴짜 기업인’ ‘반항아’ ‘경영계 이단아’로 불리기도 한다. 라쿠텐을 글로벌 회사로 만들고 수직적인 조직 문화를 개선하기 위해 사내에서 영어 공용화를 주장하기도 했을 정도다. 그는 언론 인터뷰에서 일본 사회의 ‘안정 지향적’인 풍토를 꼬집으며 청년들에게 ‘도전하라’고 강조하곤 한다.

김형규 기자 k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