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맥주 1, 2위 아사히·기린… 판매량 기준 놓고 '정면충돌'
일본 맥주 업계 1, 2위인 아사히와 기린이 26년간 고수해온 시장점유율 통계를 두고 정면충돌했다.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으로 유통업체의 의뢰를 만든 맥주(PB맥주)도 자사 맥주 판매량에 포함시켜야하는지를 두고서다. PB 맥주를 판매량으로 잡으면 기린의 시장점유율이 아사히에 육박하기 때문에 두 회사 모두 치열한 ‘기싸움’을 벌이고 있다.

5일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아사히와 산토리는 지난달 맥주 업계 회의에서 기린에 거세게 항의했다. 기린이 올해부터 PB 맥주 산출량을 자사 맥주 판매량에 포함시켰기 때문이다. 아사히와 산토리는 “PB 제품은 제조 의뢰자가 판매자이기 때문에 맥주 회사의 출하량 통계에 넣어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반면 기린은 “PB맥주 시장이 전체 맥주 시장의 10%까지 커진 상황에서 이를 무시하는 통계는 한계가 있다”고 반박했다.

일본 맥주 업계는 1992년부터 맥주가 유통돼 주세(酒稅)가 붙는 시점을 기준으로 ‘과세 출하량’을 집계했고, 이를 바탕으로 시장 점유율을 산출해왔다.

니혼게이자이는 “각 사의 의견 차이가 좁혀지지 않은 탓에 상반기 맥주 시장 점유율 발표가 당초 예정일(11일)에 나오지 못할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전했다. 맥주 업계에선 PB맥주를 맥주회사 판매량으로 잡느냐, 마느냐를 놓고 “맥주 시장의 규모가 더 커질 수 있다”는 찬성 논리와 “통계의 연속성이 없어 시장을 제대로 파악하기 힘들다”는 반대 논리가 첨예하게 부딪히고 있다.

기린이 갑자기 통계 산출 방식을 바꾼 것은 대형 유통사 이온이 PB맥주인 ‘바 리얼’의 제조를 기린에 맡겼기 때문이다. 이온의 바 리얼 맥주는 350㎜ 한 캔이 84엔으로 일반 맥주보다 40% 가량 저렴하다. 현재 3000개 매장에 유통하고 있다. 이온은 바 리얼을 연간 1000만개 이상 팔아 전체 맥주 시장의 3~4% 장악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 PB 상품을 기린의 판매량에 포함시키면 아사히와 기린의 점유율 격차는 39% 대 32%로 확 줄어든다.

기린은 과거 맥주 시장의 절반 이상을 점유했지만 1987년 아사히가 ‘슈퍼 드라이’ 맥주를 내놓으면서 위상이 흔들렸고, 2001년 아사히에 1위 자리를 뺏겼다.

과도한 시장 점유율 경쟁이 맥주 시장 전체에 독이 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일본 맥주 시장은 2013년 이후 매년 1% 가량 줄어들고 있다. 니혼게이자이는 전문가들을 인용해 “시장 점유율 경쟁에만 몰두한 결과”라며 “시장 규모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소모전은 무의미하다”고 지적했다.

맥주사들이 연말에는 시장점유율을 높이기 위해 출하 전에 세금부터 내고 ‘과세 출하량’으로 집계해 창고에 쌓아둔뒤 연초부터 판매하는 수법도 횡행한다고 전했다.

김형규 기자 k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