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대만 법원은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세계 1위인 TSMC의 전직 엔지니어인 쑤츠펑에게 산업스파이 죄목으로 18개월형을 선고했다. 그는 28나노미터(㎚) 기반의 파운드리 공정 핵심 정보를 중국 업체인 HLMC로 넘기고 이직하려다가 경찰에 붙잡혔다.

대만 반도체 기술이 중국 산업스파이 활동의 집중 표적이 되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대만의 기술 도난 사건은 2013년 8건에서 작년 21건으로 증가했다. WSJ가 이 중 10건을 검토한 결과 9건이 중국 기업과 관련된 사건으로 나타났다.

대만은 웨이퍼 기준으로 세계 반도체의 67%가량을 생산하고 있다. 파운드리 분야의 TSMC, UMC뿐만 아니라 메모리 회사로 마이크론 산하의 렉스칩과 윈본드가 있고 난야, 이노테라 등도 기술력을 갖추고 있다.
중국의 끈질긴 기술 탈취… 대만은 '반도체 스파이' 전쟁터
중국은 산업 고도화 전략인 ‘중국제조 2025’를 통해 반도체 자급률을 2025년까지 40%(모바일 기준)로 높일 계획이다. 1조위안(약 177조원)을 반도체 분야에 투자하기로 한 것도 이 때문이다. 중국은 2015년부터 SK하이닉스, 미국 마이크론 등과의 기술 제휴 또는 인수를 시도했으나 각국의 거부로 성공하지 못했다.

그러자 대만 등에서의 산업스파이 활동을 강화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대만 법무부 조사국의 린웨이청은 WSJ와의 인터뷰에서 “중국의 스파이 행위는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며 “대만은 인종이 같고 의사 소통이 쉬우며 지리적으로도 가까운 데다 반도체 기술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마이크론은 지난해 12월 대만 UMC와 중국 푸젠진화반도체(JHICC)가 D램 반도체 특허와 영업비밀을 침해했다며 미국 캘리포니아주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소장에 따르면 JHICC는 UMC에 요청해 함께 마이크론 D램 기술을 훔치기로 모의했다. UMC는 2016년 초 마이크론의 대만 자회사에서 일하던 엔지니어 두 명에게 접근했다. 이들은 마이크론 D램 기술이 담긴 900개가 넘는 서류를 챙긴 뒤 UMC로 이직했고 이 기술은 이후 JHICC에 건네졌다.

JHICC는 2016년 말부터 마이크론이 대만에서 생산하던 것과 같은 구조의 D램에 대해 마케팅을 시작했으며 올해 말 시범 생산, 내년에는 양산에 돌입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회사는 중국 푸젠성이 대주주다.

중국 업체들은 또 대만의 반도체 인력을 집중적으로 스카우트하고 있다. 마이크론은 대만 자회사에서 2016~2017년 2년간 200명의 엔지니어를 중국에 빼앗겼다. 중국 반도체 회사들은 최대 5배까지 많은 연봉을 제안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도 중국 산업스파이의 활동 무대다. 뉴욕타임스(NYT)는 지난달 25일 중국 우한 칭화유니 산하의 YMTC가 삼성전자 메모리칩을 베끼고 있다고 보도했다. 증권사 샌퍼드번스타인의 마크 뉴먼 애널리스트는 “YMTC가 삼성전자 메모리칩과 사실상 완전히 똑같은 제품을 만들고 있다”며 “그들이 삼성 칩을 복제한 게 분명해 보인다”고 지적했다. 한국의 반도체 인력도 최근 몇 년 새 1000명 이상이 중국 회사로 옮긴 것으로 알려졌다.

뉴욕=김현석 특파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