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추덕영 기자 ch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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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0년간의 역사에 비춰볼 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외교무대에서 벌이는 ‘댄스’가 성공할 것이라고 볼 만한 근거는 전혀 없다. 북한이 핵 프로그램을 포기할 것이란 구체적인 증거도 없고 북한이 국제적 합의를 존중한 적도 없다. (북한에 대한 국제 사회의) 경제적 압박으로 (군을 앞세우는) 선군(先軍)정치가 변했다는 신호도 없다.

그럼 왜 미국은 북한과 정상회담을 한 걸까. (북핵 문제에 대해) 딱히 낙관적으로 봐야 할 이유도 별로 없는데 미국은 왜 김정은에게 트럼프와의 정상회담이란 커다란 선물을 안겨줬을까. 미국과의 정상회담은 (북한을 정상국가로 인정한다는 의미가 될 수 있는 만큼) 국제 무대에서 북한 체제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효과가 있는데도 말이다.

해답은 김정은이 지난 4월20일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한 발언에서 찾을 수 있다는 게 김정은을 연구해온 한국 관료들의 설명이다. 김정은의 발언을 분석해보면 그는 북한이 수십 년간 몰두해온 핵 개발에서 벗어나 ‘경제적 퇴행’에서 탈출하려는 전략적 변화를 꾀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여기가 바로 의심해야 하는 대목이다. (김정은의) 4월 발언을 다시 들여다보는 게 중요하다. 그 발언이 미국과 한국의 관료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북한에 대한 개입 정책(정상회담을 비롯한 대북 유화 정책)을 시도해보려고 결심한 배경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김정은의 이날 발언은 북한 선전매체인 조선중앙통신에 잘 요약돼 있다.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김정은은 이날 전원회의에서 “더 높은 목표를 이루기 위해 중요한 일을 결정하려고 회의를 소집했다”고 밝혔다. 이어 “전반적인 정세가 빠르게 변하고 있다”며 (정세 변화의 핵심으로) 북한이 지난해 “국가 핵무력을 완성함으로써 기적적인 승리를 이뤘다”는 점을 꼽았다. 김정은은 북한 주민들이 지난 수년간 “(핵무기라는) 강력한 보검을 얻기 위해 허리띠를 졸라매며 열심히 일했다”며 그 임무는 “성공적으로 완수됐다”고 했다. 또 이는 ‘북한 인민들의 품위 있는 삶’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정은은 승리를 선언하면서 중대한 전환을 했다. (북한은) 이제 더 이상 핵실험을 해야 할 필요가 없다. 핵탄두를 운반할 수 있는 중거리 미사일과 장거리 미사일 시험 발사도 더 이상 필요가 없어졌다. 왜냐하면 그 일(핵무력 완성)은 “끝났으니까”라고 김정은은 말했다. 마찬가지 이유로 핵 실험장을 운영할 필요도 더 이상 없어졌다.

김정은은 북한이 다른 “중요한 과제”에 직면했으며 “당의 전략노선은 당과 국가의 모든 노력을 사회주의 경제 건설에 집중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누구도 요점을 놓치지 않도록 그는 “우리의 모든 노력을 사회주의 경제건설에 집중함으로써 혁명을 진전시키자”고 강조했다.

요약하면 김정은은 이른바 “새로운 전략 노선”으로의 전환을 선언했다. (그의 발언에 따르면 북한은 이제) 핵보다 경제 개발이 더 중요한 과제가 됐다. 물론 그 발언에 얼마나 의미를 부여할지를 판단해야 한다.

우선 김정은은 분명 전략노선의 변화를 외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런 일이 (북한 정권에서) 처음은 아니다. (핵 문제와 관련해) 북한이 진실을 말한 적은 거의 없었다. 둘째, 핵무기 개발보다 경제 개발을 중시하겠다는 말이 사실이라고 해도, 그 말이 이미 개발된 핵무기까지 포기하겠다는 뜻인지는 불분명하다.

김정은은 (그 발언을 통해) 북한의 생각을 밝히고 있다. 북한은 이제 핵무기를 가진 국가이며 이로써 ‘김정은 체제’는 사실상 안전해졌다는 생각 말이다. 그런데 김정은은 ‘핵 개발 능력을 입증하면 체제 보장이 충분히 가능하다’고 말하는 걸까, 아니면 ‘여전히 핵무기를 보유할 필요가 있다’고 말하는 걸까.

이건 명확하지 않다. 그리고 이 점이 중요하다. 트럼프 행정부의 장기 목표는 단순히 김정은의 ‘핵 기계’를 멈추게 하는 게 아니다. 그걸 되돌려 더 많은 핵무기와 핵장비를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을 없애는 게 트럼프 행정부의 장기 목표다.

김정은이 그렇게 할 것이라고 믿기는 아직 어렵다. 그러나 그는 (유년 시절) 서방에서 교육받은 젊은 지도자다. 세계와 세계 속에서 북한의 위상에 대해 아마도 그의 아버지나 할아버지와는 다른 시각을 갖고 있을 것이다. 4월20일 (김정은의) 발언은 정말 진지한 걸까, 아니면 경제적 지원을 얻기 위한 계략일까. 이걸 알아야 트럼프-김정은 간 정상회담 결과를 가장 잘 판단할 수 있다.

원제=Face-to-Face Meeting Puts Kim’s Words to the Test

정리=주용석 기자 hohobo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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