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이정희 기자 ljh9947@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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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인과 유튜브 스타뿐만 아니라 학생과 주부 등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온라인 쇼핑몰 창업에 뛰어들고 있다.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도 옷과 액세서리를 파는 사람이 넘쳐난다. 누구나 쉽게 인터넷 쇼핑몰을 창업할 수 있게 해주는 플랫폼 서비스 덕분이다. 독일 출신 고교 중퇴생 토비 뤽케(37)가 캐나다에서 창업한 ‘쇼피파이(Shopify)’는 이 분야 최고 기업이다. 북미지역 전자상거래 부문을 통틀어서도 아마존과 이베이에 이어 3위다. 탄탄한 기술력이 비결이지만 최고경영자(CEO) 뤽케의 개방적인 철학도 빼놓을 수 없는 요인으로 꼽힌다.

탄탄한 기술력이 밑바탕

쇼피파이는 불과 10여 년 만에 175개국에서 60만 개의 쇼핑몰을 대상으로 서비스하는 대기업으로 성장했다. 카니예 웨스트와 라디오 헤드 등 유명 가수들도 자신의 앨범 등을 팔기 위해 서비스를 이용한다. 제너럴일렉트릭(GE), 테슬라와 같은 대기업도 쇼피파이 고객이다.

쇼피파이의 성공은 플랫폼 기술력 측면에서 탄탄한 기본기가 뒷받침됐기 때문이다. 뤽케는 독일 프랑크푸르트 근교의 코블렌츠라는 도시에서 자란 컴퓨터광이다. 독학으로 프로그래밍을 배웠고, 고등학교 시절 지멘스에서 프로그램 엔지니어 인턴으로 일하려고 17세에 학교를 중퇴했다.

[Global CEO & Issue focus] 토비 뤽케 쇼피파이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
쇼피파이는 2004년 뤽케가 스노보드용품 쇼핑몰을 창업하기로 마음먹은 게 계기가 됐다. 스노보드 여행으로 방문한 캐나다에서 운명적인 사랑을 만나 결혼하고 정착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다.

쇼핑몰 홈페이지를 만들다 보니 당시 널리 쓰이던 ‘마이크로소프트 커머스’와 ‘야후 스토어스’ 등 도구가 미흡해 보였다. 그래서 처음부터 자체 전자상거래 엔진을 프로그래밍했다. 만들고 보니 기존 제품보다 더 간결하면서 빠르고 시각적으로도 우수했다. 인터넷 커뮤니티에 초기 전자상거래 관련 앱(응용프로그램)을 공개했더니 이용자들의 반응이 좋았다. 그들은 스노보드보다 소프트웨어를 파는 게 더 유망하다고 판단해 업종을 바꿨다.

입소문을 타면서 고객이 20여 개의 기업으로 늘어났고 2006년 10월 8000달러의 매출을 올렸다. 뤽케는 당시 처가에 얹혀살고 있었다.

이후 캐나다 토론토와 미국 실리콘 밸리 등에서 투자자들이 찾아오면서 사업 확장의 기반을 다졌고, 고객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2015년엔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됐다. 지속적인 투자로 적자를 내고 있었는데도 상장 당시 시가총액은 약 12억7000만달러(약 1조4000억원)에 달했다.

남의 말에 귀 기울이는 열린 정신

괴짜 프로그래머가 몇 년 만에 글로벌 CEO로 급성장한 비결 중 하나는 능력 있는 사람을 알아보고, 조언에 귀를 기울인 것이다. 뤽케는 자신이 ‘내성적인 기술자’라는 사실을 알고 경영에선 동료들을 믿고 의지했다.

뤽케는 뉴욕타임스(NYT)와의 인터뷰에서 “투자자들과 만나 회의하고 대화하는 일이 시간을 허비하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닫는 데 수년이 걸렸다”고 말할 만큼 처음엔 경영엔 관심이 없었다. 그럼에도 회사를 성장시킬 수 있었던 건 창업 초기에 공동창업자인 스콧 레이크를, CEO가 된 이후엔 최고운영책임자(COO) 할리 핀켈스타인과 마케팅 전문가 크레이그 밀러 최고제품책임자(CPO)를 믿고 전권을 맡겼기 때문이다.

회사의 고용전략도 남다르다. 뤽케는 입사 지원자들을 살필 때 이미 이룬 것보다는 앞으로의 잠재력을 더 중시한다. 뤽케는 스스로를 “어릴 때부터 반항아 기질이 있고, 반권위주의적”이라고 소개한다. 쇼피파이도 채용을 할 때 보수적이고 순종적인 사람은 원하지 않는다. 자유로운 사고를 지닌 반항아들을 반긴다. 도전적이고 긍정적인 인재를 고용하기 위해 반사회적 인물이나 조직 부적응자를 고용할 위험까지 감수한다. ‘기회’라는 단어를 어떻게 여기는지도 중요하다. 기회를 ‘업계 경쟁이나 사내 정치의 결과로 얻어지는 것’으로 여기는 사람은 사절이다. ‘기회는 어디나 있고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것’이란 열린 사고를 가진 사람을 선호한다.

장기전략 잃지 않으려고 은둔

회사 업무가 몇 배로 늘어났지만 뤽케는 분기마다 ‘은둔 주간(studio weeks)’이라 불리는 휴식기를 갖는다. 캐나다 오타와 사무실에 박혀 코드를 작성하거나, 책을 들고 숲속에 들어가 미래 구상을 가다듬는다고 한다. 미래 변화를 예상해 장기 비전을 설정하고, 이를 바탕으로 회사의 운영 방향이 올바른지 생각해보는 일이다.

예컨대 미래에는 소비자들이 문자 메시지, 스냅챗, 넷플릭스 등 온라인과 모바일 어디에서나 쇼핑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 온라인 쇼핑이 더욱 확산되면서 가상현실(VR)의 중요성도 높아질 전망이다.

뤽케는 이런 생각을 바탕으로 신사업 진출에 속도를 내고 있다. 빅데이터와 인공지능(AI)에 대한 대규모 투자가 대표적이다. AI가 수십만 명의 판매자를 추적해 성공과 실패를 결정하는 요소를 학습하고, 이를 활용해 판매자들에게 컨설팅 서비스를 제공하는 모델을 만들어가고 있다. 중소기업 대출 사업에도 진출했다. 유망한 판매자에게 대출이나 투자를 하는 사업이다.

이현일 기자 hiunea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