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4일(현지시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공개서한을 보내는 형식으로 다음달 12일 싱가포르에서 열릴 예정이던 미·북 정상회담을 취소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단어를 구술한 것으로 알려진 A4 용지 반 장 분량의 이 편지엔 미·북 정상회담을 취소한 배경과 함께 앞으로 북한과의 물밑 외교전이 어떻게 펼쳐질지를 짐작할 수 있는 단서가 숨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격식 갖춰 계약 취소 통보하듯 …...전형적인 트럼프式 비즈니스 레터"
트럼프 대통령은 편지에서 김정은을 거론할 때 ‘각하(His Excellency)’ ‘친애하는 위원장님(Dear Mr. Chairman)’ 등으로 칭하며 상당한 격식을 갖췄다. 하지만 거래를 계속하려면 좀 더 유리한 조건을 제시하라고 요구하는 전형적인 ‘트럼프식 비즈니스 레터’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편지는 북한과 김정은에 대한 호의적인 표현으로 시작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첫 문장에서 “미·북 정상회담을 위해 북측이 쏟은 시간과 인내와 노력에 깊이 감사한다”며 “나는 당신과 만나기를 매우 기대했다”고 썼다. AP는 개인적인 친밀감마저 전해지는 표현이라고 보도했다.

네 번째 문장에선 “슬프게도 최근 (김계관·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 등의) 성명서에 드러난 엄청난 분노와 적대감으로 봤을 때 지금 회담 개최는 부적절하다고 생각한다”며 ‘본론’을 꺼냈다. 워싱턴포스트(WP)는 “이 문장이 편지의 핵심”이라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어지는 문장에서 “당신은 북한 핵 능력을 얘기하지만 우리(미국) 핵이 훨씬 크고 강력하다”고 강조했다. AP는 “트럼프 대통령이 물러서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이라고 설명했다.

두 번째 단락은 다시 유화적인 표현으로 돌아갔다. 트럼프 대통령은 “나와 당신 사이에 훌륭한 대화가 이뤄지고 있다고 느꼈다”며 “언젠가 당신과 만나기를 매우 고대한다”고 했다. 북한이 억류 중이던 미국인 세 명을 지난 9일 석방한 것을 언급하면서 “매우 칭찬받아야 할 아름다운 행동”이라고까지 했다. 북한과 대화의 문을 완전히 닫지는 않겠다는 뜻을 내비친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편지의 마지막 단락엔 트럼프 대통령의 사업가적 면모가 드러난다. 그는 “당신이 정상회담을 해야겠다고 마음이 바뀐다면 망설이지 말고 내게 전화하거나 편지를 써달라”고 했다. 미국이 아니라 북한의 태도가 바뀌어야 정상회담이 열릴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세계는, 특히 북한은 지속적인 평화와 번영과 부를 얻을 기회를 놓쳤다”며 정상회담 취소로 손해를 입는 것은 미국이 아니라 북한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WP는 “(협상이 깨졌을 때) 상대방이 입을 손해를 상기시키면서 협상 테이블로 돌아오도록 하는 전형적인 트럼프식 협상 전략”이라고 분석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기회를 놓친 것은 역사적으로 정말 슬픈 순간”이라며 다시 한번 북한의 태도 변화를 촉구하는 말로 편지를 마무리했다.

유승호 기자 ush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