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미정상 취재진과 일문일답 >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2일(현지시간) 미 백악관에서 단독 정상회담에 앞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 한·미정상 취재진과 일문일답 >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2일(현지시간) 미 백악관에서 단독 정상회담에 앞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2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문재인 대통령과의 회담에 앞서 한 모두발언과 언론 문답을 통해 “조건이 충족되지 않으면 6월12일 미·북 정상회담이 미뤄질 수 있다”고 말한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난 16일 나온 북한의 ‘북·미 회담 보이콧’ 시사 성명에 맞대응하기 위한 압박인지, 북한과의 충분한 협의를 위해선 시간이 필요하다는 의미인지, 파국을 각오해야 한다는 의미인지를 놓고 해석이 분분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날 “북한 비핵화 과정이 현실적으로 일괄타결(all-in-one)로 가기 힘들다”고 직접 언급한 것은 북한과의 협상 여지를 넓힌 발언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미·북 회담 연기론 꺼낸 트럼프

트럼프, 20일 앞두고 '회담 연기' 카드… 北에 "조건 맞추라" 최후통첩
트럼프 대통령은 문 대통령과의 한·미 정상회담 전 기자들과 만나 “조건이 맞지 않으면 (미·북 정상)회담이 열리지 않을 것”이라거나 “나중에 다른 시간에 열릴 수 있다” 등 회담 취소와 연기 가능성을 둘 다 언급했다. “어쩌면 문 대통령이 미·북 정상회담에 대신 참석할 수도 있다”는 말도 했다.

그동안에도 트럼프 대통령은 “성과가 없을 것으로 예상되면 회담장을 박차고 나올 것”이라고 말해왔다. 하지만 이날 발언은 지난 16일 북한이 미국의 강력한 비핵화 요구에 반발해 ‘회담 보이콧’을 시사한 뒤 직접 회담 연기와 취소 가능성을 거론한 것이어서 주목받았다.

미국 언론들은 연기 가능성을 일제히 거론하고 나섰다. 워싱턴포스트(WP)는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이 회담 취소가 아니라 회담 연기에 방점을 둔 것 같다”며 “이는 중대한 의미가 담겨 있는 것”이라고 보도했다. WP는 “스케줄에 얽매여 성과 없는 회담에 나서지는 않겠다는 뜻을 트럼프 대통령이 분명히 밝힌 것”으로 해석했다. 동시에 트럼프 대통령이 미·북 정상회담 성공에 그만큼 몰두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로이터통신은 트럼프 대통령이 정상회담으로부터 뒷걸음질 치는 것인지 아니면 북한을 전략적으로 구슬려 협상 테이블로 이끌려는 것인지는 불분명하다고 밝혔다. 미 싱크탱크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보니 글레이저 선임고문은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보다 정상회담을 더 원하는 것처럼 보이길 원치 않는다”며 “연기 의사를 언급한 것은 똑똑한 움직임이었다”고 평가했다.

◆CNN “美 선발대 회담장소 조사 중”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북한에 공을 넘겨 압박하기 위한 것으로, 회담이 예정대로 진행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정말 연기하거나 취소하려는 의도는 아니라는 분석이다.

CNN은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과의 회담을 위한 준비를 진행하고 있으며 실제 미국 정부 선발대가 싱가포르에서 회담 장소 선정을 위한 호텔 연회장 조사를 벌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국무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미·북 정상회담이 예정대로 열리겠는가’라는 질문에 “나는 도박사가 아니다”라면서도 “우리 팀과 백악관이 계속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한·미 정상회담에서 “북·미 정상회담이 예정대로 열릴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도 지난 21일 미국 방문길에 대통령 전용기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북·미 정상회담 성사 가능성은 99.9%”라고 말했다.

◆트럼프식 비핵화 협상안은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 비핵화 모델이 ‘포괄적 비핵화’냐 ‘단계적 보상 비핵화’냐를 묻는 질문에 “포괄적이면 좋겠지만 반드시 그렇게 갈 것이라고 약속하기를 원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이어 “(포괄적 비핵화를) 짧은 시간 안에 해야 하는데 물리적 이유 때문에 꼭 그렇게 된다고 장담하기 힘들다”고 부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비핵화 개념이 핵무기·연료·시설과 미사일 프로그램 폐기만 포함하는 것인지, 핵무기·미사일 외에 대량살상무기(WMD) 폐기까지 포함하는 것인지 명확히 하지 않았다. 그러나 어떤 범위의 완전한 비핵화든 짧은 시간 안에 완벽히 진행하기 힘들기 때문에 ‘중간 보상이 있을 수 있다’는 여지를 남겼다. 북한이 요구하는 비핵화 단계별로 보상이 뒤따르는 ‘단계적·동시적’ 비핵화를 어느 정도 수용할 수 있음을 처음으로 내비쳤다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과의 협상에서 유연성을 보였다”면서 정책적 변화라기보다 미·북 정상회담을 예정대로 진행할 수 있게 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보인다고 해석했다. 마이크 펜스 부통령과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등 백악관 강경파들은 그동안 “완전한 비핵화 이전에 보상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강조해왔다.

워싱턴=박수진 특파원 ps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