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추덕영 기자 ch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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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년 전 (필자가) ‘차이메리카(차이나+아메리카)’라는 개념을 처음 썼을 땐 새로운 세계 질서를 요약해 보여주려는 의도였다. 중국의 수출 주도 성장과 미국의 과소비가 얽힌 세계 질서 말이다. 당시 미국은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이었고 중국은 장차 미국의 라이벌이 될 가능성이 큰 나라였다. 가장 현실성이 떨어져 보이는 이 두 나라를 하나로 엮은 말이 차이메리카였다.

(얼마 전) 베이징에서 미·중 무역협상단이 타협에 실패했다. 이제 이 두 나라의 ‘결혼’은 파탄 직전 상황이 된 걸까.

차이메리카가 성립하게 된 것은 중국이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한 2001년 이후다. 중국은 (WTO 가입을 계기로) 거대한 노동력과 잉여 저축을 세계 경제에 통합시켰다. 이는 인건비와 자본조달 비용 절감을 통해 세계적으로 자본수익률을 끌어올렸다.

중국이 얻은 반대급부도 컸다. WTO에 가입했을 때 중국의 국내총생산(GDP)은 미국의 13%에 불과했다. 이는 2016년 60%로 높아졌고 2023년엔 88%에 달할 것이라고 국제통화기금(IMF)은 전망했다. 미국에 차이메리카는 값싼 소비재와 낮은 금리를 의미했다. 이는 2000년대 중반 집값 버블의 핵심 요인이었다.

2008~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차이메리카의 종언으로 보였다. 하지만 10년이 흐름 지금 차이메리카는 건재하다. 차이메리카는 세계 GDP의 40%를 차지한다. 미국 무역적자의 거의 절반이 중국과의 무역에서 발생한다. 2015년 상당한 자금이 유출됐지만 중국의 외환보유액은 3조달러가 넘는다. 차이메리카는 (미국과 중국의) 안정적 공생 관계였다.

하지만 오늘날의 차이메리카는 2007년과는 상당히 다르다. 우선 중국이 바뀌었다. 중국은 많은 점에서 점점 미국을 닮아간다. 가계소비가 늘고 임금이 오르며 금융시스템은 복잡해진다. 특히 중국의 금융시스템은 부외거래(회계장부에 나타나지 않는 거래)와 막대한 부채를 안고 있다.

하지만 가장 큰 변화는 뭐니뭐니 해도 도널드 트럼프 당선 이후의 미국이다. 미국의 리더가 반(反)중국을 표방하기 시작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지난해 12월 펴낸 미국의 새로운 국가안보전략은 중국을 ‘전략적 경쟁자’로 명시했다. 백악관은 무역 분야에서 전투적으로 접근한다. 중국산 제품에 잇따라 관세 부과를 추진하고 있다. 트럼프가 차이메리카를 위협하는 근본 원인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진짜 원인은 다르다. 중국과 미국은 2015년부터 갈라지기 시작했다. 당시 중국은 내부에서 커지는 금융 위험을 줄이기 위해 몇 가지 방어적 조치를 취했다. 이 조치에는 외환정책이 포함됐는데, 핵심은 위안화를 안정화하는 동시에 외환보유액이 대폭 감소하는 걸 막기 위해 자본을 통제하는 것이었다.

이 조치는 세계적으로 커다란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위안화는 (정부의 관리를 받게 되면서) 글로벌 투자자에게 덜 매력적인 통화가 됐다. 이에 따라 위안화는 2014~2016년 달러화 대비 저평가됐다. 이는 중국과의 무역에서 미국의 무역적자를 늘리는 역할을 했다. 이와 동시에 중국 경제는 미국 경제보다 상당히 빠른 속도로 성장했다. ‘중국이 위기에 빠질 것’이란 서구 전문가들의 거듭된 예상은 번번이 빗나갔다.

이 같은 흐름이 2016년 미국 대선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트럼프는 트위터와 연설에서 계속 ‘중국 때리기’를 했고 그 결과 중국과의 무역에서 가장 피해를 본 (러스트벨트 같은) 지역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

중국에 대한 반발은 어느 정도는 차이메리카의 진화에 따른 불가피한 결과다. 트럼프가 없었다 해도 그런 반발이 나타났을 것이다. 비록 트럼프보다는 거칠지 않은 모습이었겠지만 말이다. 마코 루비오 상원의원(공화당)이 중국에 점점 더 강경한 자세를 보이는 걸 보라. 게다가 이는 (중국에 대한 강경한 자세는) 트럼프가 민주당 성향 유권자로부터도 지지를 얻는 이슈 중 하나라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상당수 서구 전문가는 트럼프의 관세 부과가 잘못된 생각에서 비롯됐다고 생각한다. 투자자들은 무역전쟁이 전면전으로 치달을 수 있다고 우려한다.

우리의 생각은 다르다. 무역전쟁의 효과를 시뮬레이션해보고 우리가 내린 결론은 중국이 진로를 바꾸도록 하는 게 맞다는 것이다.

(무역전쟁의 강도가 중간 정도인) 온건한 시나리오에 따르면 중국의 수출은 연 4%가량, 중국의 경제성장률은 연 0.3%포인트까지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은 중국보다 훨씬 덜 취약하다. 미국이 중국에서 수입하는 금액은 중국 GDP의 4% 정도다. 미국이 중국으로 수출하는 금액은 미국 GDP의 1%도 안 된다.

이달 초 미·중 무역협상 때 중국 관리가 이런 말을 했다. “올해는 (뭔가를) 시험해보는 해다. 올바른 방향으로 가면 좋을 것이다. 하지만 잘못된 방향으로 가면 땅이 흔들릴 것이다.” 그런데 뭐가 올바른 방향일까. 어떤 나라가 (다른 나라로부터) 관세를 부과받았을 때 예상할 수 있는 대응은 보복관세를 매기는 것이다. 무역협상에선 제품 카테고리별로 흥정하는 게 정석이다. 하지만 차이메리카는 그런 접근이 악순환을 부를 수 있다. 이는 세계 경제를 불안정하게 할 수 있다.

그런 만큼 베이징의 협상가들은 ‘중국과의 무역에서 미국의 적자가 중국의 정책과는 무관하다’는 식의 가식을 벗어던져야 한다. 중국이 2001년 이후 세계 경제의 버팀목이 된 이후 많은 게 변했다. 당시 중국은 단지 ‘거대한 신흥시장’이었지만 지금은 미국에 필적하는 경제력을 갖춰가고 있을 뿐 아니라 미국의 공공연한 전략적 라이벌이다. 미국과 중국의 결혼은 이를 고려해 조정돼야 한다.

간단히 말해 새로운 균형이 필요하다. 이는 중국이 한발 물러서 미·중 간 무역에서 미국의 적자를 줄이기 위해 노력할 때 가능하다. 차이메리카의 ‘이혼’은 원만하게 이뤄지지 않을 것이다. 중국과 미국뿐 아니라 세계 경제가 타격을 입을 것이다.

원제=Trump and the ‘Chimerica’ Crisis

정리=주용석 기자 hohobo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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