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티나에 이어 터키와 인도네시아까지 신흥시장에서의 외국인 자금이탈이 가속화하고 있다. 이들 국가는 급속한 자금 유출과 통화가치 급락을 막기 위해 앞다퉈 금리인상 등 긴급 조치에 나서고 있지만 시장 불안을 잠재우기엔 역부족인 모습이다.
'자금이탈 쓰나미' 印尼·터키도 덮쳤다
달러 거래비중이 높은 신흥국일수록 최근 달러 강세로 더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무역거래와 해외채무 등을 갚기 위한 부담이 계속 늘어나고 있어서다.

◆터키·인도네시아도 불안

파이낸셜타임스는 9일(현지시간) 터키의 리라화 가치가 사상 최저치로 떨어지자 터키 정부는 대통령 주재로 긴급회의를 열었다고 보도했다. 터키는 회의 직후 “중앙은행이 가진 수단을 계속 효율적으로 활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구체적 조치를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시장에선 중앙은행이 조만간 금리 추가 인상을 발표할 것으로 내다봤다. 터키는 지난달에도 기준금리를 연 13.5%로 0.75%포인트 인상했다.

'자금이탈 쓰나미' 印尼·터키도 덮쳤다
중남미 외환위기의 뇌관인 아르헨티나도 페소화 폭락에 맞서 대대적 금융 개혁안을 마련했다. 외국인 투자자들을 끌어오기 위해 금융시장 규제를 완화하는 것이 골자다. 앞서 아르헨티나는 국제통화기금(IMF)에 300억달러의 구제금융을 신청하고 협상에 들어갔다.

아시아에서는 인도네시아가 불안한 상황이다. 인도네시아 루피아는 올 들어 달러 대비 3% 하락해 28개월 만에 최저점을 기록했다. 주식 시장에서의 대규모 매도세 때문에 2015년 이후 처음으로 달러당 1만4000루피아를 넘어섰다. 인도네시아 중앙은행은 올 1월부터 루피아를 방어하기 위해 약 60억달러를 매도했지만 통화가치 하락세는 진정되지 않고 있다. 인도 루피도 2년 반 만에 최저치로 하락했다.

◆신흥국 덮치는 强달러 후폭풍

월스트리트저널은 아르헨티나, 터키, 인도네시아 등은 ‘달러라이제이션(dollarization)’ 현상이 달러 거래가 많은 신흥국 통화 위기를 부추기고 있다고 지적했다. 달러라이제이션은 전체 금융 및 무역거래에서 달러 거래비중이 높은 것을 뜻한다. 달러라이제이션이 진행되면 달러화 강세 때 비용부담이 더 늘어난다. 주요 6개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는 지난 2월 저점에서 5% 반등했다.

기타 고피너스 교수가 이끄는 하버드대 연구팀에 따르면 세계 경제와 금융시장에서 미국의 영향력이 줄고 있지만, 국제 교역과 차입에서 달러의 영향력은 더욱 커지고 있다. 달러화 거래가 많은 신흥국일수록 강달러 상황에서는 부담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아르헨티나의 대미 수입 비중은 15%에 불과하지만 달러화 결제 비중은 88%에 달한다. 또 아르헨티나가 지고 있는 국채 중 달러로 표기된 부채는 980억달러에 달하고, 민간 부문 부채는 680억달러 수준이다. 국내총생산(GDP)의 3분의 1에 해당한다. 페소화 가치가 떨어지면서 부채를 갚는 것은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현재 신흥국들은 2조달러에 달하는 달러로 표기된 부채를 갖고 있다. 고피너스 교수는 “달러가치가 상승하면서 신흥국 통화와 주식 시장, 채권 모두 매도세를 나타내고 있다”며 “현재 환율이 전반적으로 퍼지는 영향은 과거보다 훨씬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시카고대 베커 프리드먼 연구팀은 세계 투자자들이 압도적으로 자국 통화나 달러로 표기된 채권을 선호한다는 연구 결과도 내놨다. 국가 간 차입에서 달러가 차지하는 비중은 2008년 45%에서 2016년 62%로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설지연 기자 sj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