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과 새로운 협상을 할 준비가 돼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8일(현지시간) 이란 핵협정 탈퇴를 선언하면서 밝힌 말이다.

미국 정부는 이와 함께 이날 대(對)이란 경제제재를 재개하기 전에 3~6개월 유예기간을 두겠다고 공식 발표했다. 이란과 맺은 기존 상거래 계약을 청산할 시간을 준 것이지만 그 사이에 핵협정 개정 협상을 이란 정부와 하겠다는 게 미국 측 계획이다.

核협정 파기한 트럼프… '先공격 後협상' 이란에도 통할까
트럼프 대통령 특유의 ‘먼저 강하게 때린 뒤 협상하는’ 전술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철강·알루미늄 수출국에 고율의 추가 관세를 부과한 뒤 개별 국가와 벌인 관세면제 협상이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 협상 등에서 이 같은 전술을 써 이득을 봤다.

이란에도 이 같은 전술이 통할지는 미지수다. 월스트리트저널은 ‘트럼프의 이란 핵합의 철회는 그의 사상 최대 도박이 될 것’이란 제목의 칼럼에서 “경제제재가 다시 시작되면 이란이 협상에 응할 것이란 게 트럼프 대통령의 계산이지만 제재는 이란 경제를 혼란에 빠뜨리고 온건파인 하산 로하니 정부를 위협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과거 미국 등 6개국과의 핵협정 논의를 주도했던 로하니 대통령의 정치적 입지는 벌써 흔들리고 있다. 로하니 정부가 무너지면 강경파인 군부와 종교계 등이 득세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게다가 트럼프 대통령이 요구하는 협정 개정안은 애초 이란이 수용하기 힘든 것으로 분석됐다. 탄도미사일을 제한하는 등 이란의 중동 내 영향력이 축소될 수밖에 없는 내용이 포함돼 있어서다. 뉴욕타임스(NYT)는 “핵개발을 저지하기보다 이란 체제를 붕괴시키겠다는 데 도박을 건 것”이라는 유럽 외교관의 말을 인용해 보도하기도 했다.

미국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도 “미국은 이란의 탄도미사일 발사 등 여러 구실을 내세우지만 트럼프 행정부의 매파와 유대인 세력은 줄곧 이란 정부 붕괴를 겨냥해왔다”고 지적했다. 이란 핵협정 탈퇴의 목적이 이란 내 민중봉기를 유도해 이슬람 정권을 무너뜨리려는 것 아니냐는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리처드 하스 미국외교협회(CFR) 회장은 NYT와의 인터뷰에서 “최악의 상황은 이란이 핵개발을 재개하고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를 용납할 수 없다고 판단해 군사력을 사용하며, 이에 이란은 테러 등으로 대응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뉴욕=김현석 특파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