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아이칸
칼 아이칸
“나는 칼 아이칸이다. 빌 애커먼이 하는 짓은 옳지 않다. 반대편에 돈을 걸겠다.”

다단계 판매회사 허벌라이프의 마이클 존슨 최고경영자(CEO)는 2012년 12월 크리스마스에 ‘발신자 표시 제한’ 글귀가 뜬 전화 한 통을 받았다. 기업에 투자한 뒤 주가를 올리기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는 행동주의 투자자인 애커먼 퍼싱스퀘어 CEO가 허벌라이프를 “피라미드 사기 회사”라며 공격한 지 며칠 지난 때였다. 존슨 CEO와 일면식도 없던 아이칸 아이칸엔터프라이즈 CEO가 스스로 “백기사가 되겠다”며 전화를 걸어온 것이다.

빌 애커먼
빌 애커먼
미국 뉴욕 월스트리트의 행동주의 투자자들로 유명한 아이칸과 애커먼의 15년에 걸친 전쟁을 그린 책 《늑대가 물 때(When the wolves bite)》가 미국에서 출간됐다. 저자는 CNBC 방송의 앵커인 스캇 웨프너다. 아이칸과 애커먼은 2013년 1월 웨프너가 진행하는 생방송에서 30분간 악담을 주고받아 월스트리트를 경악하게 했다.

아이칸과 애커먼의 첫 전쟁은 2003년 시작됐다. 당시 애커먼은 20대에 세운 ‘고담’이라는 헤지펀드가 큰 손실을 냈고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조사를 받고 있었다. 궁지에 몰린 애커먼은 펀드를 폐쇄하면서 보유 중이던 홀우드리얼티 주식을 아이칸에게 매입할 것을 제안했다. 애커먼은 시장가격은 주당 60달러였지만, 조만간 주당 140달러로 오를 것이라고 설득했다. 아이칸은 “애커먼을 구해주겠다”며 주당 80달러에 그 주식을 샀다. 두 사람은 아이칸이 3년 안에 주식을 팔아 10% 이상 수익을 내면 초과수익을 나눠 갖기로 계약했다.

문제는 2004년 홀우드가 다른 회사에 주당 137달러에 인수되면서 생겼다. 애커먼이 수익 배분을 요구하자 아이칸은 “회사가 인수된 것이지 내가 지분을 판 게 아니다”며 거부했다. 애커먼은 곧바로 소송을 냈다. 소송은 7년이 지난 뒤인 2011년 애커먼의 승리로 끝났다. 아이칸은 원금 450만달러에 이자까지 합쳐 약 900만달러를 송금했다. 아이칸은 그리고 애커먼에게 전화했다. 전화 통화에서 무슨 얘기가 오갔는지 둘의 얘기는 엇갈린다. 애커먼은 “아이칸이 다시 친구가 되자고 했지만 ‘관심 없다’고 말한 뒤 끊었다”고 했다. 반면 아이칸은 “나한테 설교하려 해서 ‘50년간 너 없이도 잘해왔다’고 말해줬다”고 반박했다. 이 이야기는 2011년 뉴욕타임스에 자세히 보도되기도 했다.

아이칸은 앙심을 품었다. 2차전은 허벌라이프를 둘러싼 다툼이다. 애커먼이 주식 10억달러어치를 공매도한 것을 알게 된 아이칸은 “허벌라이프에 문제가 없다”며 두 배인 20억달러를 들여 주식을 사들였다. 애커먼은 허벌라이프 주가가 30달러 아래로 떨어져야 이익을 볼 수 있는데, 아이칸의 매수로 주가는 오히려 올랐다. 아이칸은 2013년 1월 블룸버그TV에서 “남의 회사를 나쁘다고 떠들거나 공격하려면 아예 SEC에 들어가서 조사하는 일을 하는 게 낫다”며 “애커먼을 싫어한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TC)는 2년간의 조사 끝에 2016년 7월 허벌라이프가 ‘다단계 사기 업체’는 아니라고 결론 냈다. 다만 다단계 사기 혐의를 받을 만한 사업 관행은 정비하고, 소비자 보호를 위해 2억달러를 내도록 했다. 주가는 폭등했고, 최근에 주당 100달러 이상으로 거래되고 있다.

애커먼은 작년 말부터 올해 초까지 ‘울며 겨자 먹기’로 주식을 사서 공매도 포지션을 정리했다. 이 과정에서 수억달러 손실을 본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아이칸은 5억달러 이상을 벌었다. 허벌라이프를 둘러싼 둘 간의 싸움은 넷플릭스가 ‘제로에 베팅하다(betting on zero)’라는 드라마로 제작해 방송하기도 했다.

애커먼은 최근 허벌라이프에 이어 캐나다 제약사 밸리언트에 대한 투자 실패로 40억달러 이상의 손실을 봤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지난 3년간 투자자들이 계속 이탈하면서 애커먼의 퍼싱스퀘어 자산이 2015년 200억달러에서 최근 89억달러로 감소했다”고 보도했다. 이 중 40억달러는 애커먼 자신의 돈이다.

뉴욕=김현석 특파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