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승호 기자의 Global insight] "새벽까지 일하는지 지켜보겠어" 월가의 편지… '워라밸'은 꿈인가
한국 근로자의 연간 근로시간은 2016년 기준 2069시간이다. 선진국에 비해 시간제 일자리가 부족한 고용 구조로 인해 통계가 일부 왜곡됐다는 지적도 있지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멕시코(2255시간) 다음으로 근로시간이 길다. 버스기사들의 졸음운전 사고 등과 맞물리면서 ‘과로 사회’를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진 배경이다.

[유승호 기자의 Global insight] "새벽까지 일하는지 지켜보겠어" 월가의 편지… '워라밸'은 꿈인가
장시간 근로가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통계상 근로시간이 한국보다 짧을 뿐만 아니라 ‘눈치보기 야근’이 없을 것 같은 선진국에서도 장시간 근로는 종종 사회 문제가 된다.

최근 미국 투자은행 몰리스앤드코의 중간 간부가 부하 직원들에게 보낸 이메일이 공개됐다. 새벽 2시께 발송된 이 메일의 제목은 ‘오늘 밤’이다. 그 간부는 메일에서 “방금 사무실을 둘러봤는데 11명이 자리에 앉아 있었다”고 했다. 이어 “내가 여러분들이 일하는지 알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새벽에 누가 사무실에 있는지 보는 것뿐”이라고 썼다. 메일이 언론에 보도되자 여론은 들끓었고, 기사 댓글란은 거친 비난과 욕설로 뒤덮였다.

더구나 이 회사에선 2015년 29세의 젊은 직원이 자살한 사건도 있었다. 그 직원은 자살하기 전날 출장에서 돌아와 오후 6시부터 다음날 새벽 1시까지 회사에서 일했고, 집에 돌아간 뒤에도 오전 9시45분까지 업무 이메일을 보내는 등 손에서 일을 놓지 못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 보도에 따르면 몰리스앤드코 직원의 평균 근무시간은 주당 84.3시간에 달한다.

아마존도 근로시간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다. 정보기술(IT) 전문매체 더버지는 영국 스태퍼드셔 물류창고에서 일한 제임스 블루워스의 《저임금 영국에서 6개월간의 위장취업》이라는 책을 인용해 아마존 직원들이 과중한 업무에 시달린다고 보도했다.

이 매체는 “물류창고 직원들은 화장실에 갈 시간도 없어 빈 병에 용변을 처리한다”며 “너무 많은 목표치가 주어지기 때문”이라고 썼다. 또 “아마존은 직원이 아플 때도 충분한 휴식시간을 주지 않는다고 한다”고 전했다. 해당 물류창고 근무직원(251명)의 55%가 우울증을 겪고 있다는 조사 결과도 내놨다.

일본에는 ‘과로 자살’이란 말이 있다. 과중한 업무를 견디다 못해 자살하는 것을 말한다. 2015년 일본 최대 광고회사 덴쓰의 24세 신입사원이 업무 스트레스에 시달리다 자살한 사건이 있었다. 젊은이들이 선망하는 직장인 덴쓰에서 이런 일이 발생하자 일본 사회는 충격에 빠졌다.

2016년 9월엔 노무라부동산의 50대 직원이 자살했다. 이 직원은 정규 근무 외 초과 근무로만 한 달에 180시간 넘게 일한 적도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각국 정부와 기업이 초과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월스트리트의 많은 은행들은 주말근무를 줄이고 적정 수준의 휴가를 보장하는 제도를 도입했다. 일본 정부는 최근 주 40시간 이외의 연장근로를 연 720시간으로 제한하는 법안을 의회에 제출했다. 일본 기업의 올봄 노사교섭에서도 야근 및 잔업 축소가 주요 의제였다.

하지만 이상과 현실, 제도와 현장 사이의 거리는 좁혀지지 않고 있다.

한국에선 주당 근로시간을 52시간으로 제한하는 근로기준법이 지난 2월 국회를 통과했다. 300인 이상 기업은 7월1일부터 이 법을 따라야 한다. 근로시간이 줄어 ‘워라밸(일과 여가의 균형)’이 가능해지리라는 기대도 있지만 부작용에 대한 우려도 크다. 주말근무와 야근수당이 줄어들 것이기 때문에 오히려 근로자들이 근로시간 단축에 반대하기도 한다.

브룩 매스터스 FT 논설위원은 칼럼에서 “장시간 일하는 문화가 더 좋은 결과를 낳는다는 증거는 없다”고 했다. 그러는 그 역시 “장시간 근로가 낯설지 않다”며 “에디터가 이른 아침에 연락할 것에 대비해 호출기를 침대 곁에 두고 자곤 했다”고 소개했다. 선진국에서도 워라밸은 실현하기 쉽지 않은 꿈같은 일인지 모르겠다.

ush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