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 회원국 동의·협상 진통 불가피…'미 우선주의'와 충돌할 듯

미국과 중국의 통상 갈등 속에 세계 최대의 경제 공동체를 만드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이 부활할지 관심이 쏠린다.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미국의 TPP 탈퇴를 선언한 지 약 1년 3개월 만에 재가입 검토를 관련 기관에 지시했기 때문이다.

보호무역주의자인 트럼프 대통령이 그동안 TPP를 미 경제의 '잠재적인 재앙'으로 규정한 점에 비춰볼 때 큰 입장 변화다.

하지만 당장 무역갈등이 커지는 중국에 대한 견제·압박용 카드 성격이 강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이 실제 TPP 재가입 의지가 있는지는 불투명하다는 것이다.

특히 미국이 TPP에 재가입하려면 일본과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 멕시코, 칠레, 페루, 싱가포르, 베트남, 말레이시아, 브루나이 등 기존 11개 TPP 회원국의 동의를 얻어 협상해야 하는데 험로가 예상된다.
트럼프의 TPP 재진입 순탄할까… 美-11개국 샅바싸움 예상
이들 11개국은 기존에 미국과 합의한 TPP의 일부 조항을 수정한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협상을 타결, 지난 3월 서명했다.

CPTPP 참가국들의 경제 규모는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약 13%를 차지한다.

미국이 참가할 경우 전 세계 GDP의 약 38%를 차지하는 TPP의 경제 규모에 비하면 크게 줄어들었다.

내년 봄 CPTPP 발효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미국의 재가입 문제는 협정 전체를 뒤흔들 수 있다.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운 트럼프 대통령이 TPP 복귀와 관련, "(전임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에게 제안됐던 것보다 상당히 나은 거래여야 한다"는 단서를 달았기 때문이다.

다른 회원국 입장에서는 최대 수출시장인 미국의 TPP 복귀에 따른 수출 확대를 기대할 수 있지만, 미국이 예전 TPP보다 더 많은 양보를 요구해 그동안 협상 과정에서 어렵게 이룬 '이익의 균형'을 흔들 것을 우려한다.

또 CPTPP 합의 때 기존 TPP 조항들 가운데 미국에는 유리하지만 다른 국가에는 불리한 지식재산권 보호 기간 등 20개항의 시행을 보류했는데 이를 어떻게 되살리지도 민감한 사안이다.
트럼프의 TPP 재진입 순탄할까… 美-11개국 샅바싸움 예상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5일(현지시간) 미국이 TPP에 재가입하려면 11개 기존 회원국의 동의를 모두 얻어야 한다며 트럼프 대통령이 요구하는 거래가 성사되기 어려울 수 있다고 전망했다.

제프리 쇼트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 선임연구원은 미국의 TPP 복귀에 대해 "자동으로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며 오히려 다른 국가들이 미국에 양보를 요구할 가능성을 제기했다.

한번 탈퇴한 만큼 재가입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트럼프 정부는 미국산 농산물에 대한 관세 인하 등 자국의 무역적자 축소를 위한 압박을 가할 것으로 보인다.

미 공화당의 존 튠(사우스다코타) 상원의원은 최근 트럼프 대통령을 만난 직후 "우리는 농업 시장 확대를 원한다"고 밝혔다.
트럼프의 TPP 재진입 순탄할까… 美-11개국 샅바싸움 예상
오는 17∼18일 열리는 트럼프 대통령과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정상회담은 미국이 TPP에 복귀할 의사가 실제로 있는지, 실제 있다면 향후 협상은 어떻게 이뤄질지 가늠할 기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아베 총리는 'TPP 전도사'로서 미국의 TPP 재가입을 꾸준히 모색해왔다.

아베 총리가 TPP를 통해 중국을 견제하려고 미국에 일본 시장을 일부 양보할지 모른다는 것이 WSJ의 분석이다.

그러나 다른 TPP 회원국들이 모두 미국의 뜻에 순응하기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스티브 초보 호주 통상장관은 "미국이 테이블로 돌아오는 것을 환영한다"면서도 미국을 끌어들이기 위해 원점에서 협상을 다시 시작하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일본의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조차 TPP 협상을 '섬세한 유리세공'의 일부에 비유하며 재협상은 큰 진통이 따를 것으로 예상했다.

와타나베 요리즈미 일본 게이오대 교수는 "미국은 12개국의 TPP 협정에 합의했는데 떠났다"며 "다시 돌아오고 싶다고 말하지만 받아들일 수 없는 일로, 협상 규칙에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