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폭탄’ 공세에 자동차·금융시장 개방과 수입 확대 카드를 꺼내 들었다. 더 이상의 확전을 원하지 않는다는 신호를 보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시 주석은 10일 중국 하이난성에서 개막한 보아오포럼 연설에서 “중국은 개혁·개방을 통해 세계 경제에 기여하고 협력 발전을 이끌었다”며 “시장 개방을 확대하겠다”고 말했다.

시 주석은 올해로 40주년을 맞은 개혁·개방정책을 더욱 가속화하기 위한 조치들을 제시했다. 크게 △시장 진입 규제 완화 △투자환경 개선 △지식재산권 보호 강화 △적극적 수입 확대 등 네 가지다.
확전 대신 '트럼프 달래기'… 車·금융 시장개방 카드 꺼내든 시진핑
구체적 방안으론 자동차산업과 은행·보험·증권 등 금융업종에 대한 외국인 자본 출자비율 제한 완화를 꼽았다. 외국 자동차 기업이 중국에서 생산하려면 반드시 중국 현지 업체와 합작해야 하고 지분율은 50% 이상을 가질 수 없도록 한 규정을 바꾸겠다고 약속했다. 예를 들어 현대자동차가 중국에 진출했을 때 베이징자동차와 50 대 50 비율로 합작해 베이징현대를 세웠는데 앞으로는 절반을 넘는 지분 보유를 허용하겠다는 것이다.

시 주석은 “중국은 무역수지 흑자를 목표로 하고 있지 않다”며 “진지하게 수입을 늘리고 경상수지 균형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올해 안에 자동차 관세를 현재의 25%에서 상당폭 낮추고 다른 제품의 수입 관세도 인하하겠다고 밝혔다. 중국 국민의 수요를 고려해 관련 상품 수입도 늘리겠다고 했다. 전날 트럼프 대통령이 트위터를 통해 “미국의 자동차 수입 관세가 2.5%인 데 비해 중국은 25%에 달한다”고 비판한 것을 의식한 조치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올해 안에 은행과 증권, 보험에서 엄격하게 적용하는 외국인 투자 제한 규정도 완화하겠다고 밝혔다. 외국인이 중국에서 금융업을 하려면 합작사를 설립해야 한다. 증권사의 외국인 지분 상한은 49%, 보험사는 50%다. 은행은 단일 지분은 20%, 합산 지분은 25% 한도로 규제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에 대해 고율 관세 부과 조치를 취한 명분이 된 지식재산권 보호 방침도 분명히 했다. 중국 현지 업체와 외국계 기업이 정상적인 기술교류로 합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겠다며 해외 기업의 지식재산권 보호를 위한 법 집행을 강화하겠다고 했다.

시 주석은 하지만 “정상적이고 합리적인 첨단기술 제품 교역에 대한 선진국의 규제가 중단돼야 한다”며 “외국도 중국의 지식재산권을 보호해주길 바란다”고 지적했다. 미국이 중국의 첨단기술 제품 수출을 제한한 것을 겨냥한 발언으로 해석된다.

시 주석은 이날 “중국 특색의 자유무역항 건설도 모색하겠다”고 밝혔다. 홍콩처럼 상품과 자본, 인적자원이 자유롭게 넘나드는 자유무역항을 중국 본토에 개설하겠다는 뜻이다. 구체적인 장소를 거론하진 않았지만 중국 내에선 하이난성을 염두에 둔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시 주석의 연설에는 미국과의 통상 갈등을 완화하려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고 분석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시 주석이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와 대비되는 연설을 통해 중국을 무역질서를 지키고 있는 글로벌 파트너로 표현했다고 전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시 주석이 언급한 조치들은 대부분 이전에도 발표한 내용”이라며 “미국에 대한 큰 양보는 없었다”고 평가했다.

베이징=강동균 특파원 kd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