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러시아 제재로 지난 9일 러시아 증시가 11% 폭락하는 등 금융시장이 충격에 빠졌다. 루블화 가치는 4% 넘게 급락했다. 과거 유가 하락으로 촉발된 경제 위기에서 겨우 벗어나는 듯하던 러시아 경제가 다시 침체에 빠질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미국과 유럽연합(EU)은 러시아의 2014년 우크라이나 침공, 2016년 미국 대선 개입, 시리아 아사드 정부 지원 등을 이유로 러시아 제재를 지속하고 있다.
시리아 화학무기·美 제재 후폭풍… 러시아 경제 '패닉'
이런 가운데 미국이 지난주 금요일인 6일 러시아 친(親)정부 재벌(올리가르히)에 대한 추가 제재를 발표한 데 이어 러시아의 지원을 받는 시리아 정부가 반군 지역에 화학무기 공격을 했다고 비판하면서 이번주 초부터 러시아 증시가 요동쳤다.

◆충격에 빠진 러시아 금융시장

러시아 증시를 대표하는 RTS지수는 9일 11.4% 급락했다. 모스크바증권거래소(MOEX)의 러시아지수도 8.6% 떨어졌다. 두 지수 모두 2014년 이후 최대 낙폭이다. 미국 달러화 대비 러시아 루블화 가치도 4.3% 하락했다. 2015년 6월 이후 2년10개월 만의 최대 하락폭이다.

특히 러시아 알루미늄 기업 루살은 미국의 제재로 상당수 거래처에 대금을 지급할 수 없게 되면서 이날 주가가 50% 넘게 폭락했다. 이 회사 소유주인 러시아 재벌 올레크 데리파스카 베이직 엘리먼트 회장은 2016년 러시아 정부의 미 대선 개입에 연루됐다는 혐의로 제재 대상에 올랐다.

투자자들은 제재 대상이 아닌 러시아 기업 주식까지 대거 내다팔았다. 러시아 최대 은행인 스베르방크와 니켈업체 노릴스크 니켈의 주가는 각각 17.3%와 15% 하락했다.

◆사라진 ‘장밋빛 전망’

올초까지만 해도 긍정적이던 러시아 경제 전망은 속속 부정적으로 바뀌고 있다. 게리 그린버그 에르메스인베스트먼트 본부장은 “(투자 측면에서 현재 러시아는) 2014년 우크라이나 침공 때보다 더 불확실하다”며 “당시엔 주요국이 어떻게 대처할지 예상이라도 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고 전했다.

러시아는 2015~2016년 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하는 등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지난해 1.5% 성장하며 회복 국면에 접어들었다. 2016년 말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감산 합의로 러시아 수출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원유 가격이 안정세를 보인 덕분이다.

러시아 중앙은행(CRB)과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러시아 경제성장률이 지난해 수준(1.5%)을 웃돌 것으로 내다봤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4선에 성공하고 환율과 금리가 안정세를 보이는 등 대내외적 여건이 긍정적이었다.

그러나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등을 돌리며 러시아 경제 전망은 급격히 어두워졌다. 지난 1월 미국 재무부가 2016년 미 대선 개입과 관련된 러시아 고위 관료와 기업인 등 210명의 명단을 공개한 데 이어 지난 6일 러시아 재벌 등에 대한 제재를 단행했다. 지난달 영국에서 러시아가 자국 출신 이중스파이의 독살을 시도했다는 의혹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EU는 이 사건을 계기로 추가 경제 제재도 검토하고 있어 러시아의 경제적 고립은 더욱 심화될 전망이다.

러시아 당국은 10일 시장 안정을 위해 구두 개입에 나섰다. 안톤 실루아노프 러시아 재무장관은 “러시아 경제와 금융시장에 미국의 제재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모든 수단을 강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현일 기자 hiunea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