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500억달러(약 53조원) 규모의 ‘관세폭탄’을 주고받으며 통상전쟁을 벌이고 있는 미국과 중국이 4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에서 만났다. 미·중 모두 상대방 급소를 겨냥한 관세 부과가 실제 이뤄지면 감당하기 힘든 피해를 보는 만큼 어떻게든 협상을 통해 돌파구를 찾기 위해서다. 양국 정부에선 이날 나란히 협상 필요성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중 협상은 (단순히 미국의 무역적자를 줄이는 것을 떠나) 양국 교역 관계의 새 판을 짜기 위한 협상”이라며 “최소 6개월은 걸릴 수 있다”고 내다봤다.

中 “탱고 추려면 두 사람 있어야”

로이터통신 등 외신들은 이날 미 국무장관대행인 존 설리번 국무부 부장관과 추이톈카이(崔天凱) 주미 중국대사가 미 국무부 청사에서 한 시간가량 면담했다고 보도했다. 미 국무부 측은 “양국이 보복관세 발표 전에 잡은 일정”이라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그러나 중국 대사관 측은 추이 대사가 면담에서 미국의 무역보호주의 행위 포기와 대화와 협상을 통한 문제 해결을 촉구했다고 밝혔다. 추이 대사도 기자들과 만나 “우리는 여전히 협상을 선호한다”며 “탱고를 추려면 두 사람이 있어야 한다. 미국이 어떻게 나올지 지켜보겠다”고 말했다. 이틀 전 중국 관영 CCTV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의 관세 부과에 중국은 동일한 규모와 강도로 반격할 것”이라고 한 것과는 크게 달라진 태도다.

존 설리번(왼쪽), 추이톈카이.
존 설리번(왼쪽), 추이톈카이.
중국은 미국무역대표부(USTR)가 지난 3일 25%의 고율 관세를 부과할 중국산 1333개 품목(500억달러어치)을 공개하자 곧바로 106개 미국 수입품에 똑같은 관세 부과를 발표하며 맞대응에 나섰다.

하지만 하루 만에 주광야오 재정부 차관은 “(관세 부과) 리스트만 발표됐을 뿐 아직 관세 부과 효력은 없는 상태”라며 “모든 문제가 테이블에 올라온 만큼 이제는 협상과 협력의 시간이 됐다”고 말했다. 그는 또 미국 CNBC와의 인터뷰에서 리커창(李克强) 총리가 최근 통화정책위원회 회의에서 미 국채 보유분을 줄이는 것이 논의 대상이 아니라고 밝힌 걸 언급한 뒤 “이것이 미 국채 투자에 대한 중국 당국의 진정한 정책”이라고 말했다. 국채 매각으로 미국을 공격할 뜻이 없음을 분명히 한 것이다.

미국도 시장 불안 진화 나서

'관세폭탄' 하루 만에… 美 "무역전쟁 우려 과장" 中 "협상할 시간 됐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의 보복관세 조치 발표 직후 트위터 글을 통해 “우리는 중국과 무역전쟁을 하고 있지 않다”며 “이미 (연간) 5000억달러 적자를 기록하는 상황에서 더 잃을 게 없다”고 했다. 그러나 양국 맞대응 소식에 이날 뉴욕증시(다우존스산업평균지수 기준)가 개장 직후 요동치자 미 정부의 기류가 달라졌다.

래리 커들로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은 폭스비즈니스 방송에 출연, “이것은 단지 첫 번째 (관세 부과에 관한) 제안일 뿐”이라며 “앞으로 수개월 동안 실질적 조치가 시행될 것이라고 보기 힘들다”고 진화에 나섰다. 미치 매코널 상원 원내대표도 중국의 반격으로 타격을 받은 지역구 의원들의 반발이 심해지자 “무역전쟁을 하는 데 염려하고 있고 도를 넘지 않기를 바란다. 맞보복으로 가기 전에 중단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협상시간은 충분… 최소 240일

미국 언론은 앞으로 양국이 밀고 밀리는 협상을 벌일 것으로 예상했다. 미국은 3일 대(對)중국 관세부과 품목을 발표하면서 발효 시기를 특정하지 않았다. 다음달 15일 공청회 개최, 22일까지 재계 의견 청취 종료라는 기한만 발표했다. 그 후에도 180일 동안 관세 부과 여부를 심사할 수 있다. 앞으로도 최소 240일은 시간이 있다는 얘기다. 양국이 그 전에 협상을 타결하면 없던 일이 된다.

WSJ는 “오는 10일 있을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보아오포럼 기조연설이 주목된다”고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중 무역적자 해소와 불공정 무역관행 개선을 요구하며 관세보복으로 포문을 열었다.

시 주석은 아직 한 번도 이에 대응하지 않았다. 시 주석은 3년 만에 참석하는 보아오포럼에서 미·중 관계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밝힐 것으로 예상된다.

워싱턴=박수진/베이징=강동균 특파원 ps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