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T 김정은 방중 해설…북한 반성·중국 승리로 묘사
전문가 "관계개선 아닌 북미협상 전략적 우위 점하려는 계산"


북·중 정상회담 당시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공손하게 수첩을 펴들고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발언을 받아적는 모습이 공개되면서 부자 관계를 떠올린 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전격적으로 이뤄진 이번 회담은 냉각된 북·중 관계 개선의 신호탄이 아니라 양국의 전략적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것으로, 양국의 해묵은 갈등은 여전하다고 봤다.



28일(현지시간)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중국 CCTV가 공개한 회담 장면에서 양국 정상이 "아버지와 잘못을 저질러 꾸지람을 듣는 아들"의 관계와 유사한 역학관계를 보였다고 전했다.

FT는 "시 주석은 최근 몇 년간 양국 갈등이 깊어진 이래 처음으로 땅딸막한 독재자(김 위원장)를 만난 자리에서 자신이 스승인 듯 무표정하게 김 위원장을 바라보며 그의 말을 들었다"고 묘사했다.

신문은 양국 정상회담은 중국에 큰 승리로 '돌아온 탕자'처럼 그려졌다고 전했다.

'돌아온 탕자'는 성서의 한 이야기다.

가족을 배신하고 자기 몫의 재산을 들고 집을 나간 아들이 가진 것을 탕진한 뒤 남루한 모습으로 귀가해 아버지 앞에서 죄를 뉘우치고 용서를 받는다는 줄거리다.

양국 정상회담은 김 위원장의 아버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지난 2010년 중국 베이징을 방문한 이래 처음 이뤄졌다.

그러나 신문은 공식적으로 동맹인 양국의 실제 관계는 "25년간 이어온 불신과 적개심으로 점철된 관계"라면서 최근 김 위원장이 아버지 김 국방위원장보다 중국 정부의 뜻을 더 무시하면서 상황은 더 나빠졌다고 설명했다.
"시진핑과 '돌아온 탕자' 김정은? 속깊은 갈등은 여전"
김 위원장은 중국의 정상회담 일정이나 명절에 맞춰 미사일 시험발사를 강행하고 친중파였던 고모부 장성택 전 북한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을 처형하면서 중국 정부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다.

중국은 마오쩌둥의 이념을 추구하는 북한을 마치 타임캡슐처럼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지만, 북한 정권은 자본주의의 길을 가는 중국을 사회주의 이념을 버린 배신자로 인식하고 있다고 FT는 전했다.

한국전쟁 당시 중공군 수십만명이 북한을 돕고 1961년 상호원조조약을 체결한 이후 양국은 줄곧 동맹관계를 이어왔지만 1991년 한중 수교를 계기로 북·중 관계가 소원해졌고 중국 정부가 북한의 핵 프로그램에 압박을 가하면서 사이는 더욱 벌어졌다.

양국 정상이 이번 회담에서 어떤 분위기를 연출했는지와 무관하게 전문가들은 표면적으로 드러난 화기애애한 분위기와 실제 관계의 괴리는 크다고 봤다.

전문가들은 김 위원장의 중국 방문은 국가 간의 장기적 의리가 아닌 한반도 정세를 바꿀지 모를 북미정상회담에 대비한 단기적 정치셈법에 따른 것으로 풀이했다.



전 미 국방부 관리 린지 포드는 북·중회담이 "최근 몇 년간 노골적으로 싸늘했던 양국 관계의 놀라운 돌변"이라며 "양국 지도자들이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의 회담에 앞서 전략적 주도권을 확보하고 최대한 유리한 상황을 조성할 필요를 어느 정도나 느끼고 있는지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중국이 이번 북·중 정상회담에 참여한 목적을 북미정상회담에서 '차이나 패싱'(중국 배제)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의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려는 것으로 봤다.

북한이 유리한 정치적 입지를 점하고자 중국을 끌어들여 미국과 싸움을 붙이기 위해 북·중 정상회담에 응한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미 민간 싱크탱크 스팀슨센터의 쑨윈(孫雲) 선임연구원은 김 위원장이 미국에 먼저 대화를 제의하면서 중국에 소외감을 안긴 뒤 다시 중국에 손을 내밀어 미 정부를 혼란스럽게 하려는 고도의 전략을 구사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쑨 연구원은 "북한이 자국을 중추적 당사자로 만들기 위한 전형적인 속임수"라며 "미국과 중국이 서로 상대를 배제해 전략적인 우위를 점하려 하는 한 북한은 성공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