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말 안 신어도 편하다 '입소문'
실리콘밸리 CEO들의 스니커즈
"글로벌 신발업계 애플 되겠다"
일러스트=전희성 기자  lenny80@hankyung.com

일러스트=전희성 기자 lenny80@hankyung.com

지난해 여름 미국 캘리포니아주 멘로파크에 있는 벤처투자사 어거스트캐피털이 연 행사에 1000여 명의 기업가와 투자자들이 모였다. 신기술과 혁신기업을 찾는다는 것만이 그들의 공통점은 아니었다. 뜻밖에도 대다수가 같은 신발을 신고 있었다. 올버즈의 울 스니커즈다.

옷차림에 무관심한 것을 미덕으로 생각하는 엔지니어들이 모여 있는 미국 실리콘밸리의 패션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단순함’이라고 할 수 있다. 스티브 잡스 애플 창업자의 검은 폴라티, 마크 저커버그의 페이스북 최고경영자(CEO)의 회색 티셔츠를 예로 들면 바로 이해가 될 것이다.

올버즈도 단순한 디자인과 혁신적인 소재로 실리콘밸리를 사로잡았다. 메리노 울에서 뽑은 극세사로 만든 스니커즈는 누적 100만 켤레 판매를 달성했다. 18~19개월 동안 27번의 수정을 거친 결과다. 칼 울리히 미 펜실베이니아대 경영대학원(와튼스쿨) 교수는 미 경제전문지 포브스를 통해 “올버즈는 제품뿐 아니라 기업 운영 자체가 매우 혁신적”이라고 평가했다.

스타트업의, 스타트업을 위한…

[Global CEO & Issue focus] 조이 즈윌링거 올버즈 공동 창업자 겸 CEO

올버즈는 2014년 뉴질랜드 출신 전직 축구선수 팀 브라운과 친환경 해조유 제조기업의 대표인 조이 즈윌링거가 만나 설립한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이다. 은퇴 후 진로를 고민하던 브라운 올버즈 공동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는 신발 디자인에 도전해 보기로 했다. 처음엔 가벼운 마음이었다. 평소 디자인에 관심이 많았던 브라운은 우선 친구들을 위해 가죽 신발을 만들었다. 하지만 불편하다는 불평만 돌아왔다.

오기가 생겼다. 주변에서 구하기 쉬운 소재를 활용하기로 했다. 울을 써서 신발을 만들기로 결정한 것. 뉴질랜드에만 2900만 마리의 양이 있다. 뉴질랜드 울 생산자협회에서 연구자금을 받고, 미국 대표 크라우드펀딩 플랫폼 킥스타터에 울로 신발을 제작하는 프로젝트를 올렸다. 반응은 기대 이상이었다. 나흘 만에 12만달러(악 1억3000만원)를 모금했다.

이 같은 아이디어를 실현하기 위해 즈윌링거가 합류했다. 즈윌링거는 비싼 가격에 친환경 해조유를 내놓고는 판매처를 찾지 못해 고전 중이었다. 그들을 이어준 것은 다트머스대 재학 시절 룸메이트였던 두 사람의 아내였다. 아내들의 소개로 캘리포니아에서 만난 이들은 저녁을 먹으면서 바로 창업하기로 뜻을 모았다.

올버즈는 빠르게 시제품을 만들어 시장 반응을 살핀 뒤 투자를 받아 다음 제품을 개선해 나가는 전형적인 린스타트업 전략을 펼쳤다. 지난해 9월 추가 자금 모집을 통해 올버즈가 현재까지 모은 자금은 2750만달러에 달한다. 또 다른 미국 스타트업인 안경 유통 체인 와비파커 창업자들도 투자에 참여했다.

울 이어 ‘나무’로 된 섬유

올버즈가 처음 제대로 된 제품을 내놓은 것은 2016년이다. 이 신발을 래리 페이지 알파벳(구글 모회사) CEO, 딕 코스톨로 전 트위터 CEO, 벤 호로비츠 등 유명 벤처 투자자들이 즐겨 신으면서 크게 유행했다.

올버즈가 내놓은 울 스니커즈는 친환경 소재뿐 아니라 착용감과 압도적인 편의성으로 인기를 얻었다. 부드러운 소재의 특성상 맨발로 신어도 편하고, 울로 만들었지만 세탁기로도 빨아도 줄지 않는다는 것이 올버즈 울 스니커즈의 강점으로 꼽힌다. 업무용 정장보단 운동복 같은 캐주얼 차림을 즐기는 실리콘밸리의 긱(geek·괴짜 같은 컴퓨터·기술마니아)과 밀레니얼 세대(1980년대 초반부터 2000년대 초반 출생)의 취향에 적중했다. 즈윌링거 CEO는 “메리노 울에서 머리카락 굵기의 20%밖에 안 되는, 매우 얇은 실을 뽑았다”고 설명했다. 실의 굵기는 17.5미크론(μ·100만분의 1m)이다.

올버즈 스니커즈의 인기는 울이란 소재의 인기로까지 이어졌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실리콘밸리에서 올버즈 울 스니커즈 인기는 글로벌 트렌드가 됐다”고 보도했다. 아디다스, 룰루레몬, 언더아머 등도 울로 만든 속옷, 티셔츠 등을 내놓았다. 이 때문에 지난해 양모 가격이 ㎏당 14달러로 전년 대비 56% 올랐다고 WSJ가 전했다.

이달엔 유칼립투스 펄프에서 뽑은 섬유로 제작한 신발을 시장에 선보였다. 울이 겨울용 소재라면 나무(펄프)로 만든 신제품은 여름용이란 설명이다. 사탕수수, 파인애플, 대나무 등 다양한 소재로 실험을 거쳐서 유칼립투스 펄프로 실을 뽑았다. 즈윌링거 공동 CEO는 “이 섬유는 지구상에서 가장 지속가능한 소재 중 하나”라고 말했다.

“신발업계의 애플 되겠다”

올버즈의 제품은 ‘단 하나의 스니커즈를 만든다면 어떤 모습으로 디자인할까’란 질문에 대한 답이다. 애플의 핵심 전략을 채택한 것이라고 올버즈의 창업자들은 말한다. ‘디자인과 마케팅의 달인’으로 평가받는 잡스를 따라가겠다는 뜻이다. 올버즈는 실제로 초기 투자 유치액(270만달러)의 20%가량을 브랜드를 알리는 데 쏟아붓는 등 마케팅에 주력했다. 가격도 95달러로 통일했다.

즈윌링거 공동 CEO는 “사람들이 단지 신발을 만드는 회사가 아니라 혁신기업으로 올버즈를 인식하기 시작한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소비자들과의 약속은 꼭 지킨다는 이미지를 구축하겠다”며 “다음 제품도 사겠다고 마음먹게 하는 브랜드를 만들겠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추가영 기자 gychu@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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