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렉시트로 껄끄러운 EU 회원국들의 동참 끌어내
트럼프 정부 출범 이후 가장 강경한 대러 조치


세계 23개국의 러시아 정보기관 요원 집단 추방은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가 거둔 중대한 외교적 승리라는 평가가 나온다.

영국 공영방송 BBC는 이같은 집단 추방은 동맹들의 강력한 지지 성명에 뒤이어나온 합심한 행동인 데다 러시아를 향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정부 입장의 상당한 강화로 기록되는 것이라며 이같이 평가했다.

유럽연합(EU) 16개국과 미국, 캐나다, 호주 등 세계 23개국은 26일(현지시간) 자국 주재 러시아 외교공관에 등록된 스파이들로 의심되는 외교관 약 120명을 추방했다.
러 정보요원 집단 추방은 메이 총리의 외교적 승리
영국 언론들은 메이 총리가 영국 솔즈베리에서 발생한 세르게이 스크리팔 부녀암살 기도 배후로 러시아를 지목한 이래 메이 총리, 나아가 EU를 떠나는 영국의 시험대라는 인식 아래 서방이 보일 반응에 촉각을 곤두세워왔다.

러시아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메이 총리는 암살 기도에 사용된 신경작용제가 과거 러시아에서 군사용으로 개발된 '노비촉(Novichok)'으로 밝혀졌다면서 러시아 정부가 배후에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규정했다.

그러면서 자국 주재 러시아 정보기관 요원들로 의심되는 외교관들을 추방하고, EU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동맹들에 동참을 적극 설득해왔다.

그리고 영국이 외교력을 총동원하고 나선 지 며칠 만에 사상 최대 규모의 집단 추방이라는 결과물을 손에 쥔 것이다.

BBC는 이번 러시아 정보기관 요원 집단 추방은 "영국에 대한 괄목할만한 연대의 표시"로 해석했다.

진보 일간 가디언도 "냉전 시대 이래 서방에 있는 러시아 정보 네트워크에 가한 최대의 합심된 타격을 뜻하는 연대를 보여주는 것"으로 풀이했다.

특히 BBC는 브렉시트(Brexit·영국의 EU 탈퇴) 협상으로 영국과 EU 관계가 껄끄러운 가운데 EU 회원국 16개국이 동참하고 나선 점을 들어 메이 총리가 거둔 중대한 외교적 승리로 높이 평가했다.

보수 일간 더타임스는 "트럼프 정부가 이제까지 취한 러시아를 향한 조치 가운데 가장 강력한 조치"라는 의미를 부여했다.

그러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스크리팔 부녀 암살 시도를 두고 러시아를 명확히 비난하지 않고 있다는 비판들이 나온 가운데 미국의 추방 조치가 나왔다고 했다.

이번 조치에 나선 동맹들은 '영국에 대한 연대'와 더불어 '러시아의 국제법 위반'을 강조했다.

미 백악관은 성명에서 "영국 땅에서 러시아가 군사적 용도의 화학무기를 사용한 행위, 세계를 불안정하게 만드는 지속적인 러시아의 행위들에서 가장 최근 사례에 대해 우리는 나토 동맹들 및 파트너들과 함께 이런 행동에 나선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조치들로서 미국과 동맹들은 러시아에 그들의 행동은 결과를 맞게 될 것임을 분명히 한다"고 경고했다.

러시아의 국제법 위반을 눈감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보여주려 행동에 나섰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마이클 텀블 호주 총리는 한발 더 나아가 '영국에 대한 공격'은 '동맹들에 대한 공격'이라는 나토의 집단안보 취지를 꺼냈다.

텀블 총리는 러시아의 대선 개입들과 '파트너들의 주권'에 대한 위협들을 언급한 뒤 "솔즈베리에서 발생한 공격은 우리 모두를 향한 공격이었다"며 "이것이 오늘 우리가 다른 23개국과 함께 이런 행동을 취한 이유"라고 말했다.

사실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강제병합한 이래 유럽 나토 동맹들 사이에는 나토 안보체계에 대한 의문이 제기됐다.

이런 의문은 방위비 분담 목소리를 높이며 나토의 위상을 흔든 트럼프 대통령 등장 이후 더욱 확산하는 양상이었다.

보리스 존슨 영국 외무장관은 이날 BBC 인터뷰에서 이런 의심을 인식한 듯 러시아의 공격적 행동에 대한 서방의 대응에서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메이 총리 역시 "만일 러시아의 목표가 서구 동맹들을 분열시키고 겁박하는 것이라면 그들의 노력이 엄청난 역풍을 맞은 것"이라며 환영했다.
러 정보요원 집단 추방은 메이 총리의 외교적 승리
메이 총리 입장에서는 이번 집단 추방이 실추된 위상을 조금 만회하는 기회로 작용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스크리팔 암살 기도 사건이 불거지기 이전만 해도 포스트 브렉시트 진로를 둘러싸고 집권 보수당 강온 브렉시트 세력 양측으로부터 극심한 압박을 받으면서 신뢰도가 바닥 모를 추락을 겪던 와중에 이번 사건이 불거졌다.

리나스 린케비치우스 리투아니아 외무장관은 러시아 정부가 영국이 브렉시트로 EU와 결속이 약해졌다고 보고 영국을 시험하는 것이라는 진단을 내놓기도 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