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부터 18년 권력 장악…6년 새 임기 마치면 스탈린 이어 두번째 장기집권자
대외 강경책으로 지지율 고공행진…"푸틴 없인 어떤 국제문제 해결도 불가능"


사실상 4기 집권에 성공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에겐 소련 붕괴 후 혼란에 빠진 러시아를 수렁에서 구해낸 '구세주'란 찬사와 함께 장기집권을 통해 민주주의를 후퇴시키고 서방과의 대결을 격화시킨 '독재자'란 비판이 함께 붙어 다닌다.

지난 2000년 처음 대통령직에 취임한 푸틴은 2기를 연임한 뒤 2008년 헌법상의 3연임 금지 규정에 밀려 총리로 물러났다가 2012년 대선을 통해 임기가 6년으로 늘어난 대통령직에 복귀했다.

그리고 이번에 또다시 4기 집권에 성공했다.

크렘린궁을 4년간 떠나있던 총리 재직 기간에도 정치적 실권은 사실상 그에게 남아있었던 점을 고려하면 이미 18년을 통치한 그가 또다시 6년 동안 권좌를 지키게 됐다.

임기대로 2024년까지 크렘린궁에 머물면 30년 이상 권좌를 누린 이오시프 스탈린 옛 소련 공산당 서기장에 이어 러시아 현대사의 두 번째 장기집권자가 된다.
4기 도전 성공 푸틴은… "러시아의 구세주" vs "장기집권 독재자"
국내외적으로 정치적 무명 인사였던 푸틴은 1999년 8월 9일 보리스 옐친 당시 대통령에 의해 총리 대행으로 전격 발탁되면서 권력의 길로 들어섰다.

같은 해 12월 31일 옐친이 전격 사임하면서 대통령 직무대행을 떠맡은 그는 이듬해 3월 대선에서 53%의 득표율로 당선됐다.

명실상부한 최고지도자가 된 것이다.

옐친으로부터 운 좋게 권력을 물려받은 그가 '올리가르히'(신흥재벌)들의 꼭두각시 노릇을 할 것이라던 대다수 전망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크렘린에 입성한 푸틴은 특유의 카리스마로 극심한 경제난과 정치적 혼란에 빠진 러시아를 안정시키며 국민의 신뢰를 얻어갔다.

러시아 연방과 두 차례나 전쟁을 치르며 독립을 시도하던 남부 캅카스 지역의 체첸 자치공화국을 무력으로 굴복시켜 러시아인의 자존심을 살렸다.

옐친 시절 온갖 편법과 불법을 동원해 막대한 부를 축적한 뒤 정치적 영향력까지 휘두르던 올리가르히에 대한 대대적 사정도 단행, '원숭이도 대통령으로 만들 수 있다'던 그들의 오만을 꺾어놓았다.

푸틴이 무엇보다 국민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었던 건 경제성장 때문이었다.

푸틴은 집권 이후 때마침 찾아온 국제 고유가 상황을 활용, 1998년 디폴트(채무불이행)까지 내몰렸던 러시아 경제를 성장 기조로 돌려 놓았다.

푸틴 집권 이후 국제금융위기가 터진 2008년 이전까지 러시아 경제는 연 7%대의 눈부신 고속성장을 계속했고 국민 생활은 눈에 띄게 나아졌다.

그 결과 푸틴에 대한 지지율이 70%대로 치솟고 그를 러시아를 위기에서 구한 '구세주'로 칭송하는 여론이 번져 갔다.

자유언론과 야당 인사 탄압, 체첸 주둔 러시아군의 인권 유린, 관료들의 부정부패 등을 규탄하는 야권의 목소리는 푸틴의 공적에 가려 별다른 호응을 얻지 못했다.

절정의 인기를 누리던 푸틴은 2008년 5월 3기 연임을 금지한 헌법 조항에 따라 크렘린 궁을 떠났다.

옛 소련 정보기관인 국가보안위원회(KGB)에서 잔뼈가 굵은 그는 3선 개헌이란 무리수를 두는 대신 대통령에서 총리로 물러나 정치적 영향력을 유지하는 실용적 선택을 했다.

후임엔 동향(상트페테르부르크)에 레닌그라드 대학(현 상트페테르부르크 대학) 법대 후배로 1990년대 초 상트페테르부르크 시(市)정부 근무 시절부터 근 20년을 동고동락한 드미트리 메드베데프(현 총리)를 앉혔다.

총리가 된 이후에도 푸틴은 '러시아의 실세 지도자' 지위를 잃지 않았다.

2008년 시작된 국제금융 위기의 여파로 경제 사정이 어려워진 뒤에도 그에 대한 지지도는 여전히 60%대를 웃돌았다.

더딘 경제회복과 근절되지 않는 부정부패, 민주주의 후퇴 등을 비판하는 반(反) 푸틴 여론이 서서히 고개를 들었지만, 그의 정치적 입지는 크게 흔들리지 않았다.

이런 분위기를 등에 업고 푸틴은 2012년 3월 대선을 통해 3기 집권을 시도했고 결국 63.6%의 지지율로 당선됐다.

설마 하던 푸틴의 크렘린 복귀 시나리오가 현실화하고 총선 부정 의혹까지 불거지면서 10만 명이 넘는 인파가 반푸틴 시위를 벌이기도 했지만 그가 물러난 자리를 채울 마땅한 야권 지도자가 부상하지 않는 가운데 표심은 다시 그를 차선의 지도자로 선택한 것이다.
4기 도전 성공 푸틴은… "러시아의 구세주" vs "장기집권 독재자"
3기 집권 초기 장기집권에 대한 비판적 여론과 경제성장 둔화로 한동안 불안정해졌던 푸틴 대통령의 입지는 우크라이나 사태와 시리아 내전 등 국제 분쟁에 대한 강경 대응으로 다시 공고해졌다.

푸틴은 지난 2014년 정권 교체 혁명을 통해 친서방 노선을 채택한 우크라이나를 억제하기 위한 방편으로 우크라이나에 속했던 크림반도를 전격 병합했다.

뒤이어 우크라이나에서 분리·독립을 선포하고 정부군과 무장 투쟁을 시작한 우크라 동부지역 친러시아 반군들을 지원하며 친서방 정책을 추진하는 페트로 포로셴코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압박했다.

우크라이나 사태 개입을 응징하는 서방의 대러 제재에는 강력한 맞제재로 응수했다.

푸틴 대통령은 또 '아랍의 봄' 여파로 촉발된 시리아 내전에도 무력 개입해 중동권 영향력 유지·확대에 나섰다.

2015년 9월 시리아에 공군 전력을 파견해 반군에 밀리던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의 정부군 지원을 시작한 러시아는 2년여 만에 전세를 역전시켜 시리아 내전을 사실상 정부군 승리로 마무리 지어가고 있다.

이 같은 여세를 몰아 러시아는 중동의 맹주인 이란, 터키와 손잡고 시리아 내전 종전과 전후 복구 협상을 주도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사태와 시리아 내전 개입을 통해 자신감을 얻은 푸틴 대통령은 긴장이 고조된 한반도 위기 해결에도 적극 나섰다.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 프로그램에 반대해 이를 저지하기 위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 제재 결의를 지지하면서도 북핵 위협을 구실로 내건 미국의 한반도 지역 군비 증강과 한미 연합군사훈련을 비난하며 대화를 통한 문제 해결을 강조했다.

특히 중국과 함께 한반도 문제의 포괄적·단계적 해결 방안을 담은 '로드맵'을 마련해 관련국들의 이행을 촉구하며 북핵 해결 중재에 나서고 있다.

최근 들어 불거진 영국 내 러시아 이중 스파이 암살 시도 사건에 대한 서방의 비난에도 러시아의 이미지를 훼손하기 위한 영국의 자작극이란 주장을 펴며 강경 대응하고 있다.

65세의 나이에도 젊은이 못지않은 건강을 자랑하는 푸틴은 국제 저유가와 서방 제재 등에 따른 심각한 경제난 와중에도 70~80%대의 지지율을 유지해 왔다.

대외 강경 노선으로 '강한 러시아'를 열망하는 러시아 국민의 애국심에 호응한 덕분이다.

푸틴은 식지 않는 국내 지지도를 기반으로 국제 현안에서 더욱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푸틴의 개입 없이는 어떤 국제문제도 제대로 해결될 수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지난해 12월 현지 여론조사전문기관 '레바다-첸트르'의 조사에 따르면 78%의 러시아인들은 국가적 과제 해결을 위해 권력이 한 사람에게 집중될 수 있다는 견해를 밝혔다.

대다수 러시아인이 민주적 개혁이나 자유 언론, 정치적 야당, 소수자 인권 등이 아니라 정치·경제적 안정과 강대국으로서 자부심을 더 간절히 원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조사 결과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