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장난감 유통업체인 토이저러스가 14일(현지시간) 본거지인 미국에서의 사업을 완전히 청산하기로 결정했다. 지난해 9월 파산보호를 신청한 지 6개월 만이다. 오프라인 유통의 몰락을 보여주는 사례라는 평가와 함께 완구 제조업계에도 상당한 타격이 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아마존 공세 못 버틴 '70년 장난감 왕국'… 토이저러스, 미국 사업 청산
◆美 매장 폐쇄로 3만3000명 실직

데이비드 브랜던 토이저러스 최고경영자(CEO)는 이날 직원들에게 미국 내 모든 매장을 매각하거나 폐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토이저러스는 미국에만 700여 개 매장이 있으며 사업을 청산할 경우 3만3000여 개의 일자리가 사라진다. 토이저러스는 지난 1월 채무조정을 위해 184개를 닫기로 했지만 활로를 찾지 못해 결국 전 매장 폐쇄를 결정했다. 브랜던 CEO는 “프랑스, 스페인, 폴란드, 호주에서도 철수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토이저러스는 캐나다, 중유럽, 아시아 사업부도 인수자를 찾고 있다. 로이터통신은 사업 매각에 실패한 영국에서도 매장 75개가 폐쇄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토이저러스가 몰락하면서 마텔, 해즈브로 같은 글로벌 완구 제조업체의 긴장감도 높아지고 있다. 토이저러스 매출이 감소한 것은 어린이들이 장난감 대신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를 선호하기 때문이다.

1948년 미국에서 문을 연 토이저러스는 1996년 출시한 유아용품 매장 베이비저러스를 포함, 세계 1600여 개 점포를 가진 대형 완구체인으로 성장했다. 베이비붐 세대(1946~1964년 출생)를 강력한 소비자층으로 삼으며 ‘장난감 왕국’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2006년부터 2012년까지 매년 13억달러(약 1조3850억원) 이상의 안정적인 매출을 올리던 토이저러스는 2016년 매출이 11억5000만달러까지 떨어졌다. 브랜던 CEO는 “모든 것을 매물로 내놓았다”며 “이렇게라도 해서 1달러라도 더 건져야 한다”고 말해야만 하는 처지가 됐다.

◆온라인 전략 부재가 패인

‘온라인 유통공룡’ 아마존이 생활 전 분야의 물품을 취급하면서 전통적 오프라인 매장들은 생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토이저러스도 오프라인 유통업이라는 기존 틀에 갇혀 변화하는 전자상거래 시대에 정확히 대응하지 못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토이저러스는 2000년 아마존과 장난감·유아용품을 독점 판매하는 10년짜리 계약을 맺었다. 아마존을 활용해 오프라인 매출을 온라인까지 확대하는 대신 자체 판매 플랫폼 개발은 포기했다. 초기에는 매장을 찾지 않는 고객에게까지 장난감을 팔 수 있어 매출이 늘었다. 하지만 아마존이 2003년부터 타사 제품을 함께 팔면서 토이저러스 온라인 매출에 악영향을 끼쳤다. 사이가 틀어진 양사는 소송전을 벌였고, 법원은 아마존이 토이저러스에 5700만달러(약 607억원)를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아마존과의 관계를 끝낸 토이저러스는 2006년 자체 쇼핑 사이트를 열었지만 습관이 바뀐 소비자들은 아마존을 떠나지 않았다. 한두 번 클릭이면 결제까지 가능한 전문 온라인 쇼핑몰에 비해 복잡한 결제 시스템도 발목을 잡았다. 미래 사업을 남에게 맡긴 탓에 자체 성장 동력을 포기한 셈이다.

현실에 안주한 대가는 참혹했다. 미국의 2016년 장난감·유아용품 온라인 매출 분석 자료에 따르면 토이저러스는 9억1200만달러를 기록하며 아마존(21억6300만달러)과 월마트(12억8500만달러)에 뒤진 3위를 차지했다. 온라인 전문인 아마존이 1위를 고수한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오프라인을 기반으로 삼은 월마트에도 뒤처졌다는 사실은 토이저러스에 충격이었다. 토이저러스는 2016년이 돼서야 처음으로 최고기술책임자(CTO)를 임명했다.

◆근시안적 경영으로 성장동력 상실

전문가들은 토이저러스의 지배구조도 성장을 막은 요인이라고 지목한다. 사모펀드인 베인캐피털과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는 2005년 75억달러에 토이저러스를 인수했다. 이들은 차입매수(레버리지바이아웃·LBO)를 활용해 토이저러스를 사들였다. LBO는 인수하고자 하는 기업의 자산을 담보로 설정해 자금을 동원하는 기법이다. 75억달러 중 66억달러가 LBO로 조달됐다. 회사 자산을 담보로 잡고 대출을 받은 탓에 회사는 이자 부담을 계속 안고 있었다. 블룸버그통신은 “토이저러스는 한동안 사내보유금의 절반을 이자 상환에 써야 하는 상황에 몰렸다”며 “점포 확장이나 판촉, 온라인 사업 성장을 시도할 여력이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고 분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영진은 회사의 성장보다 재무지표에 과도하게 집착했다. 경제전문지 포브스는 “토이저러스는 잘못된 재무 판단이 조직을 파괴할 수 있다는 것을 일깨워주는 사례”라고 지적했다.

박상익 기자 dir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