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계에서 철옹성과 같았던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사진)의 ‘1강(强) 체제’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일본 재무성이 아베 총리 측과 긴밀한 관계였던 사학재단 모리토모학원의 국유지 헐값 매입 의혹과 관련한 공문서 조작을 인정하면서 아베 총리를 둘러싼 ‘사학 스캔들’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아베 총리의 대국민 사과에도 불구하고 책임을 실무자에게 떠넘겼다는 ‘꼬리 자르기’ 지적이 힘을 얻으면서 그동안 금기되다시피 했던 ‘포스트 아베’ 정치인의 부상도 구체화되고 있다.

13일 요미우리신문, 아사히신문, 마이니치신문 등 일본 주요 언론들은 재무성의 ‘사학비리 관련 문서 조작’ 사건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일본 엘리트 공무원 시스템의 정점에 있는 재무성이 정권 유력자의 눈치를 보며 특혜 의혹을 은폐하기 위해 정부 결재문서를 14건이나 조작한 것을 두고 정치적 성향과 관계없이 정권에 대한 비판의 강도를 높이고 있다.

문서 조작 의혹을 처음 제기한 아사히신문은 사설을 통해 “민주주의의 근간이 무너졌다”고 성토했고, 친정부 성향이었던 요미우리신문마저 “국민에 대한 중대한 배신”이라고 비판의 날을 세웠다.

특히 아베 총리와 재무성의 책임자인 아소 다로 부총리가 문서 조작 당시 재무성 이재국장이었던 사가와 노부히사 전 국세청 장관 등 일부 직원에게 문서 조작의 책임을 떠넘긴 것이 부정적 여론에 기름을 부었다.

야당들은 내각 총사퇴를 주장하는 등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다마키 유이치로 희망의당 대표는 “공문서 조작이 조직적으로 이뤄져 매우 악질적”이라며 “이번 사태는 내각 전체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나가쓰마 아키라 입헌민주당 대표대행도 “(아베 정권의) 꼬리 자르기로 수습될 수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입헌민주당 등 6개 야당은 아베 총리 부인인 아키에씨와 지난 9일 사임한 사가와 전 장관의 증인 출석을 요구하고 있다. 니카이 도시히로 자민당 간사장도 “단순 실수라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중대한 문제”라고 나설 정도로 여당 내 분위기도 좋지 않다.

아베 총리의 낙마 가능성까지 제기될 정도로 분위기가 심상찮아지자 오는 9월 자민당 총재 선거를 앞두고 여권 내 각 파벌은 대안 찾기에 분주한 모습이다. 특히 집권 자민당 내에서 아베 총리의 가장 강력한 라이벌로 불리는 이시바 시게루 전 간사장이 문서 조작 사건에 대한 정권 차원의 해명을 촉구하며 급부상하고 있다. 이시바 전 간사장은 이날 발표된 산케이신문 차기 총리 적합도 여론조사에서 아베 총리(30.0%)와 큰 차이가 없는 28.6%의 지지를 얻었다.

도쿄=김동욱 특파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