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수입 철강·알루미늄 관세 부과에 반대해온 게리 콘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사진)이 사퇴한다. 트럼프 행정부 고위직 중 거의 유일하게 자유무역을 옹호해온 콘 위원장의 퇴진으로 미국의 보호무역주의 정책이 더 강화될 전망이다.

백악관은 6일(현지시간) 콘 위원장이 사임하기로 했으며 몇 주 안에 자리를 떠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콘 위원장은 “역사적 세제개혁(법인세율 인하 등)을 비롯해 친(親)성장정책을 추진할 수 있어 기뻤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뉴욕타임스 등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콘 위원장에게 관세 부과에 대한 지지를 요구했다. 콘은 “성장을 위험에 빠뜨릴 것”이라며 반대한 뒤 사임 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과정에서 그를 ‘글로벌주의자’(자유무역 옹호론자)라고 부르며 격노한 것으로 전해졌다. 콘은 이날 철강과 알루미늄을 쓰는 미국 업계 최고경영자(CEO)들을 백악관으로 불러모아 이들의 관세 부과 반대 의견을 전하려 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이 회의를 취소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일 자국 철강·알루미늄업계 CEO와의 회동에서 수입 철강과 알루미늄에 각각 25%, 10%의 관세를 매기겠다고 밝혔다. 콘은 전날까지 ‘만약 대통령이 관세 부과를 고수한다면 사퇴할 것’이라고 배수진을 쳤던 것으로 알려졌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게리 콘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 사임이 발표된 뒤 트위터를 통해 “곧 새 수석경제고문을 임명할 것”이라며 “많은 사람이 이 일을 원하고 있다”고 밝혔다.

콘의 후임으로는 수입 철강·알루미늄 관세 부과와 수입 세탁기·태양광 패널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조치) 발동,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폐기 등을 주장해온 피터 나바로 백악관 무역제조업정책국장과 보수 성향의 경제해설가 로렌스 커들로가 거론된다. CNBC방송은 자사 프로그램을 진행해온 커들로가 철강·알루미늄 관세 부과에 반대하는 발언을 해왔다고 보도했다.

자유무역론자인 콘 위원장이 떠나면 나바로 국장뿐 아니라 윌버 로스 상무장관,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국무역대표부(USTR) 대표 등 ‘보호무역주의 강경파’들이 트럼프 대통령 곁에 남는다.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은 자유무역에는 찬성하지만 통상 담당이 아니어서 트럼프 정부의 보호무역 목소리가 더 거세질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백악관 내 ‘글로벌주의자(자유무역 옹호론자)’와 ‘국수주의자’ 간 내홍이 격화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백악관에선 올 들어서만 로버트 포터 비서관, 호프 힉스 공보실장 등 트럼프 대통령 측근들이 줄줄이 그만뒀다. 허버트 맥매스터 국가안보보좌관도 사임설이 나돈다.

뉴욕타임스는 콘 위원장을 합하면 지난해 트럼프 정부 출범 때 백악관에 합류한 보좌진 중 43%가 떠나게 된다고 전했다. CNBC는 한 행정부 관리를 인용해 “콘 위원장의 사임은 국수주의자들에게는 커다란 승리”라고 보도했다.

콘 위원장의 사임 소식에 뉴욕증시의 다우지수 선물은 장중 한때 400포인트까지 하락했다. 안전자산으로 꼽히는 엔화 가치도 달러당 105.6엔대로 뛰어올랐다.

한편 미국의 무역적자는 새해 들어서도 확대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 상무부는 지난 1월 상품·서비스 무역적자가 전달(539억달러)보다 5% 늘어난 566억달러(약 60조5337억원)를 기록했다고 7일(현지시간) 밝혔다. 2008년 10월(602억달러 적자) 후 최대 폭이다. 중국과의 교역에서는 2015년 9월 이후 최대 수준인 360억달러의 적자를 본 것으로 나타났다.

뉴욕=김현석 특파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