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의회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수입 철강·알루미늄에 대한 관세 부과 방침에 강력한 제동을 걸고 나섰다. 일부 의원은 관세 부과 행정명령을 무력화하는 입법 조치까지 거론하고 있다. 관세 부과로 초래될 가능성이 있는 글로벌 무역전쟁이 자칫 오는 11월 미 의회 중간선거에서 역풍을 일으키지 않을까 우려해서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런 의회 움직임에도 “관세 부과 방침 철회는 없다”고 선을 그었으나 어떤 식으로든 손질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미국 의회 '트럼프 관세' 강력 제동… "대통령 행정명령 무력화 입법 추진"
트럼프-라이언 정면충돌

공화당 소속의 폴 라이언 하원의장은 5일(현지시간) 성명을 통해 “우리는 무역전쟁의 결과를 극도로 걱정하고, 백악관에 이 계획(관세 부과)을 추진하지 말라고 촉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새로운 감세(법인세율 인하)법이 경기를 부양하고 있는데 그 성과를 위험하게 하고 싶지 않다”며 관세 부과 계획의 백지화를 요구했다.

라이언 의장은 트럼프 대통령, 마이크 펜스 부통령에 이어 미국 내 권력 서열 3위인 정치인이다. 의회 통상부문 지도부인 오린 해치 상원 재무위원장(공화당)과 케빈 브래디 하원 세입위원장(공화당)도 각각 대통령에게 서한 보내기와 의회 내 연판장 돌리기 등으로 철회를 압박하고 있다.

미 의회는 행정부에 위임한 무역협상촉진권한(TPA)을 만료(7월) 후 갱신해주지 않거나 정부지출 예산안에 관세 부과 방지 내용을 담도록 압박하는 방법, 행정명령 효력을 무력화하는 거부법안을 처리하는 방법 등을 통해 철강·알루미늄 관세 부과를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정치 전문매체 폴리티코는 보도했다.

이 중 관세 부과 행정명령 거부법안은 대통령으로부터 통상 관련 권한을 다시 뺏어야 하기 때문에 상·하원에서 3분의 2 이상 찬성을 얻어야 하는 부담이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공화당 지도부가 대통령의 행정명령을 무력화하는 법적 조치를 배제하지 않고 있다”고 보도했다.

지역구 눈치 보는 미국 의원들

미 공화당 주류 정치인들이 관세 부과에 반대 목소리를 분명히 내기 시작한 것은 지난 주말이 지나면서부터다. 지역구를 돌아본 뒤 민심이 심상찮게 돌아가고 있음을 감지했다.

유럽연합(EU) 내 최고 통상문제 권위자로 꼽히는 앙드레 사피르 벨기에 브뤼셀자유대 교수는 “EU의 작전이 먹히고 있다”며 “EU는 미국에서 정치적으로 민감하고 EU와의 무역 이해관계가 걸려 있는 지역을 공격해 미 행정부의 결정을 압박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EU의 대응 방안은 세 가지다. △미국 제품에 보복관세 부과 △미국 수출길이 막혀 유입될 외국산 철강에 대응(관세 부과) △외국과 공동으로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 등이다. EU는 이르면 7일께 구체적 방침을 발표한다고 예고했다.

이 중 미국 정치권을 움직인 건 농산물과 공산품 35억달러어치에 대한 EU의 보복관세(25%) 부과 경고다. EU는 할리데이비슨 오토바이, 버번 위스키, 리바이스 청바지 등을 ‘콕 집어’ 과세 대상으로 언급했다.

할리데이비슨 본사는 라이언 의장의 지역구인 위스콘신주에 있고, 버번 위스키의 95%는 미치 매코널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의 지역구 켄터키주에서 생산된다. 리바이스는 낸시 펠로시 민주당 하원 원내대표의 지역구인 샌프란시스코주에 본사가 있다.

관세를 FTA 개정 지렛대로

트럼프 대통령은 안팎의 압박에도 결전 의지를 보이고 있다. 그는 이날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만난 자리에서 관세 방침 철회 가능성을 묻는 기자의 말에 “미국은 무역 면에서 친구든, 적이든 간에 세계 모든 나라에 속아왔다는 것을 사람들이 알아야 한다”며 “물러서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트위터에 “(멕시코와 캐나다산) 철강과 알루미늄에 대한 관세 부과는 새롭고 공정한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개정 협상이 타결될 때만 철회될 것”이라며 관세 부과와 무역협정 개정을 연계할 뜻임을 시사했다.

WSJ는 “트럼프 대통령의 철강·알루미늄 관세 부과와 무역협정 연계 전략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 협상에 그대로 적용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워싱턴=박수진 특파원 ps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