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제너럴일렉트릭(GE) 최고재무책임자(CFO)에서 물러난 제프리 번스타인은 “시장이 변했는데 우리는 충분히 빠르지 못했다”며 “전력시장을 잘못 평가해 과잉 투자했다”고 자성의 목소리를 냈다. 화석연료를 활용한 기존 발전 방식을 고수한 것이 패착이었다는 사실을 인정한 발언이었다.

GE 전력사업부문(GE파워)은 그동안 그룹의 선봉장 역할을 맡아왔다. 그러나 새롭게 떠오르는 재생에너지의 가능성을 간과하고 화석연료 발전에 지나치게 의존해 수익성 악화를 겪었다. 프랑스 기업 알스톰의 전력사업부문 인수도 오히려 독이 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재생에너지 부상하는데 화력만 고집

지난해 3월 GE 임원들은 뉴욕 월스트리트에 “가스 발전소 수요가 늘지 않더라도 GE파워의 매출과 이익은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천연가스, 석탄, 원자력을 이용한 발전소가 풍력·태양광발전보다 더 효율적이라고 판단해서다. 그러나 시장은 GE 예측과 다르게 움직였다. 로이터통신은 “풍력·태양광발전 설비의 판매 급증이 기존 발전소 수요를 급격히 떨어뜨렸고, GE는 이 문제에 심각하게 취약했던 것으로 드러났다”고 보도했다.

시장에서는 전체 발전 규모에서 재생에너지가 차지하는 비중이 5%대에서 2040년에는 20%까지 커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기술 발전으로 설치 비용은 줄고 각국 정부의 지원 정책은 늘어서다. 그러나 GE는 여전히 화석연료 기반 발전산업에 치중했다. 제프리 이멜트 전 회장이 “이제 녹색이 돈을 벌어들이는 세상이 왔다”고 말했지만 구호에 그쳤다. 결과는 기업 수익성 악화로 돌아와 GE파워의 지난해 3분기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51% 급감했다.

재고 부담도 GE파워의 발목을 잡았다. 2010년만 해도 시장에선 매년 300개의 대형 가스터빈이 팔릴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2013년 글로벌 터빈 주문량은 212개였고, 4년 뒤엔 122개로 줄었다. GE는 수요 감소로 인한 피해를 정면으로 겪는 처지가 됐다. 지난해 4분기 발전설비 주문은 전년 대비 25% 감소했으며 이익도 절반 가까이 줄어든 28억달러를 기록했다.

독이 된 알스톰 인수

2014년 프랑스의 운송·발전 설비 제조업체 알스톰의 에너지부문 인수전이 벌어졌다. GE를 비롯해 독일 지멘스, 일본 도시바 등이 경쟁에 뛰어들었다. 오랜 줄다리기 끝에 GE가 97억유로(약 12조8100억원)에 인수하는 것으로 결론 났다. 이멜트 전 회장의 강력한 의지가 반영된 결과였다. 당시 그룹 임원이자 훗날 이멜트 뒤를 이은 존 플래너리 현 회장도 “전력부문은 GE 미래의 핵심이며 장기적 성장 전망이 뛰어나다”며 인수작업을 주도했다.

GE는 알스톰 에너지부문을 인수하면 복합화력발전, 재생에너지, 전력망사업 등에서 시장 주도권을 잡을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이마저도 재생에너지 발전의 수요 증가로 오히려 수익성이 나빠지는 결과를 불렀다.

GE파워는 뒤늦게 재생에너지 시장 투자를 늘려 2016년에는 세계 2위 풍력터빈 제조업체가 됐다. 그러나 GE의 상징과도 같던 기술력에서 압도적인 ‘한방’이 없다는 것은 문제다. 여기에 GE가 단기 이익에 취해 회사 앞날에는 신경을 쓰지 못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여전히 화력·원자력발전이 세계 발전의 주류지만 GE 같은 대기업이 시장의 변화를 감지하지 못했다는 것이야말로 큰 문제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러셀 스톡스 GE파워 최고경영자(CEO)는 “우리는 가스와 기타 연료가 여전히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며 기존의 사업을 고수하겠다는 의견을 밝혔다.

업계에선 플래너리 회장이 GE 재무구조 개선 작업에 들어갔지만 회사 정상화엔 오랜 기간이 걸릴 것으로 보고 있다. 스톡스 CEO는 2017년 말 주주와 투자자들에게 보낸 연례서신에서 “사업을 통합해 비대해진 조직을 축소하고 재고를 줄여 현금 유동성을 키우는 등 기본 목표를 추구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박상익 기자 dir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