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정부가 가상화폐 발행을 추진한다. 미국의 경제제재를 피하기 위한 대응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국가 부도 위기에 직면한 베네수엘라 정부가 미국의 경제제재를 피해 달러화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최근 가상화폐 사전 판매에 들어간 것과 흡사한 행보다.
이란, 베네수엘라 이어 가상화폐 발행 추진… 미국 제재 돌파구 찾는다
◆美, 이란 핵동결 협정 탈퇴 위협

22일(현지시간) 미국 CNBC 방송에 따르면 모하메드 자바드 아자리 자흐로미 이란 정보통신기술부 장관은 지난 21일 트위터를 통해 “국영 포스트은행 주도로 가상화폐 개발을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모하메드 장관은 “블록체인 기반 가상화폐에 관한 포스트은행 이사회 회의에서 이란 최초의 클라우드 기반 가상화폐를 발행할 조치들을 지시했다”고 했다.

이란, 베네수엘라 이어 가상화폐 발행 추진… 미국 제재 돌파구 찾는다
이 같은 이란의 행보는 서방국가가 주도하는 글로벌 경제시스템을 우회해 무역, 금융거래 등을 하려는 정책이라는 시각이 많다. 이란은 1979년 이슬람혁명이 일어나 반미(反美) 정권이 들어선 이후 해외자산 동결, 금융거래 제한, 원유 수출 금지 등 미국의 강도 높은 제재를 받아왔다.

오랜 서방의 경제제재로 이란은 재정난에 빠졌다. 빈번한 노후 항공기 사고도 제재 여파다. 1979년 이후 미국을 비롯한 서방의 경제제재가 본격화해 신규 항공기와 부품 수입에 차질을 빚었다.

만성적인 항공기 노후화는 안전사고 급증으로 이어졌다. 지난 18일 1993년 제조된 이란 아세만항공 여객기가 추락해 66명의 탑승객과 승무원 전원이 사망하는 등 이달에만 항공기 사고가 두 차례 있었다.

이란이 가상화폐 발행을 추진하는 것은 미국의 제재 재개로 경제적 어려움이 가중될 것을 우려해 선제 대응하는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2015년 미국 등 서방과의 핵동결 합의로 원유 수출이 재개되는 등 경제제재가 대부분 풀렸지만 미국이 이 합의를 파기할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전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합의한 핵협정을 두고 “심각한 결함이 있다”고 말했다. 오는 5월까지 미국이 원하는 대로 협정을 수정하지 않으면 파기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베네수엘라, 7억달러 이상 조달

미국의 경제제재로 디폴트(채무불이행) 위기에 몰린 베네수엘라 정부는 지난 20일부터 풍부한 원유자산을 기반으로 한 가상화폐 페트로를 사전 판매(페트로로 교환할 수 있는 토큰 판매)하기 시작했다. 총부채가 1500억달러(약 161조원)에 달하는 데 비해 외환보유액이 100억달러를 밑도는 등 달러자금 부족에 시달리고 있어서다. 2009년 1월 430억달러에 달하던 외환보유액은 국제 유가 하락과 경제제재 여파로 급감하는 추세다.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은 페트로 판매 첫날 7억3500만달러(약 7900억원)를 조달했다고 주장했다. 목표액은 60억달러(약 6조4800억원)다. 그는 지난해 12월 “미국의 제재로 가속화한 금융봉쇄에 맞서 싸우고 통화 주권을 지키기 위해 가상화폐를 도입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마두로 정부는 미국의 강력한 경제제재를 받고 있다. 미국은 지난해 7월 마두로 대통령 등 13명의 자산을 동결한 데 이어 8월엔 미국 금융회사에 베네수엘라 정부 및 국영석유회사 PDVSA가 발행한 채권의 거래를 금지하고 양국 간 교역도 제한했다. 마두로 대통령이 독재정권을 유지하려고 의회 기능을 중단하는 등 민주주의를 훼손했다는 이유에서다.

이설 기자 solidarit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