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4월8일로 5년 임기가 끝나는 구로다 하루히코(黑田東彦) 일본은행(BOJ) 총재의 연임이 결정됐다. 구로다 총재의 연임은 일본 정부가 금융완화를 통한 경기 활성화를 지향하는 ‘아베노믹스(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경제정책)’를 계속해서 추진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평가된다. 그동안 구로다 총재가 앞장서서 양적완화 정책을 시행했고, 마이너스 기준금리를 전격 도입하는 등 아베노믹스를 사실상 떠받쳐왔기 때문이다. 구로다 총재 연임 소식이 전해진 직후, 일시적으로 엔화약세 현상이 빚어지는 등 일본 정부의 정책 방향에 시장이 민감하게 반응했다.
'아베 돌격대장' 구로다 총재 5년 더 한다… 일본은행, 엔고 견제 나서나
◆‘아베노믹스의 상징’ 계속 기용한다

지난 10일 니혼게이자이신문 등 일본 언론에 따르면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대규모 금융완화 정책을 도입해 경기를 지탱해온 구로다 총재의 실력을 높이 평가해 연임 결정을 내렸다. 일본 정부 고위 관계자는 “아베 총리가 구로다 총재 연임을 포함한 BOJ 인사안을 의회에 제출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일본 정부는 이달 중 의회에 BOJ 총재와 부총재 인사안을 제출해 동의를 얻을 방침이다.

2013년 3월 취임 이후 구로다 총재는 과감한 양적완화 정책을 시행, 일본 정부 경기부양책의 선봉을 맡아왔다. 취임 직후부터 연 2% 물가상승률을 목표로 내세워 본원통화를 2년간 두 배로 늘리는 ‘대담한 양적완화 정책’을 시행했고, 2016년에는 마이너스 기준금리 정책을 도입했다. 재임 기간 세 차례에 걸쳐 추가 완화 조치를 취함으로써 아베노믹스를 뒷받침했다.

아베노믹스의 ‘첫 번째 화살’이었던 ‘대담한 통화정책을 통한 양적완화’를 성공적으로 시행하면서 구로다 총재는 ‘아베의 돌격대장’으로 불리기도 했다. BOJ의 적극적인 행보 덕에 엔화강세 현상에 제동이 걸리고 엔화가치가 10~25%가량 떨어지는 엔화약세가 장기간 지속되면서 기업실적 향상 및 고용 개선에 도움을 줬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아베노믹스가 시행된 지난 5년간 일본의 명목 국내총생산(GDP)은 494조엔(약 4953조3800억원, 2012년)에서 사상 최대인 549조엔(2017년)으로 늘었다. 실질 GDP는 7분기 연속 플러스 성장을 기록했다. 이 기간 취업자 수는 270만 명 늘어난 반면 실업자는 110만 명 줄었다. 지난해 실업률은 2.8%로 23년 만에 최저치로 떨어졌다.

아베 총리는 지난 6일 중의원 예산위원회에서 구로다 총재의 대규모 완화정책에 대해 “(잃어버린 20년으로 자신감을 잃었던) 시장의 분위기를 바꿔 나가는 힘이 됐다”며 “구로다 총재의 수완을 신뢰하고 있다”고 높이 평가했다. ‘아베노믹스의 상징’이 된 구로다 총재를 교체하는 것은 득보다 실이 많다고 판단했다는 후문이다.

◆“중장기적 엔화약세 가능성”

구로다 총재의 연임 결정으로 BOJ의 경기부양 기조도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이미 출구전략에 들어간 미국 중앙은행(Fed)이나 출구 진입을 모색하고 있는 유럽중앙은행(ECB)과 달리 BOJ는 당분간 양적완화 기조를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자연스럽게 양적완화 종료 선언이나 마이너스 금리 폐지 시점은 늦어지는 분위기다.

구로다 총재가 통화 공급 확대를 통한 엔화약세를 주도해온 만큼 최근의 엔화강세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중장기적으로는 엔화약세가 지속될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장단기 일본 국채 금리가 제로(0)% 근처에 수렴해 있는 가운데 BOJ가 양적완화를 계속 유지할 경우, 미·일 간 국채 금리차가 지속적으로 확대돼 금리가 싼 엔화를 빌려 다른 나라에 투자하는 앤캐리투자가 늘어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실제로 구로다 총재의 연임 소식이 전해진 지난 9일 오후 10시45분께는 도쿄외환시장에서 순간적으로 달러 대비 엔화가치가 0.4엔가량 떨어지는 엔저 현상이 빚어지기도 했다. 이에 따라 구로다 2기 신체제가 출범한 이후 BOJ가 시장에 어떤 메시지를 내놓을지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2기 구로다 체제 BOJ를 이끌 부총재 인선에도 시선이 쏠리고 있다. 차기 BOJ 총재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던 나카소 히로시 BOJ 부총재와 이와타 기쿠오 BOJ 부총재는 다음달 19일 임기가 끝난다. 통상 학계에서 1인, 재무성이나 BOJ 출신 1인이 부총재직을 차지했는데 양적완화와 적극적인 재정정책을 주장하는 인물로 후임 부총재 인선이 이뤄질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마이니치신문은 “적극적인 통화정책 실무를 주도한 아마미야 마사요시 BOJ 이사의 부총재 승진과 아베 총리의 경제브레인인 혼다 에쓰로 스위스 대사(전 시즈오카대 교수)의 부총재 임용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도쿄=김동욱 특파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