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중국 간 통상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미국이 중국산 태양광 패널에 관세를 부과하는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조치)를 발동하자 중국도 미국산 수수에 대한 반(反)덤핑 조사에 나섰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말폭탄’ 수준에 그쳤던 주요 2개국(G2) 간 갈등이 ‘행동 대 행동’으로 맞붙는 모습이다.
중국, 트럼프 세이프가드에 '맞불'… 미국산 수수 덤핑 조사 착수
◆세이프가드 발동 2주 만에 보복

중국 상무부는 지난 4일 홈페이지 공고를 통해 미국에서 수입된 수수에 대해 반덤핑 및 반보조금 조사를 시작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외국산 태양광 패널과 세탁기에 세이프가드를 발동한 지 2주일여 만에 내놓은 조치다.

상무부는 미국 정부가 수수를 수출할 때 보조금을 지원했다는 증거가 있다고 주장했다. 왕허쥔 상무부 무역구제조사국장은 “미국산 수수가 일반적인 시장가보다 낮은 가격으로 수출돼 중국 생산업자에게 피해를 준다고 판단해 반덤핑 조사에 착수했다”고 설명했다.

이번 조사는 2013년 1월부터 2017년 10월까지 수입한 수수를 대상으로 내년 2월4일까지 이뤄질 예정이다. 상무부는 조사가 내년 8월4일까지 연장될 수도 있다고 밝혔다.

미국은 세계 최대 수수 수출국이다. 중국은 최대 수수 수입국으로 지난해 500만t(약 1조1950억원어치)을 수입했다. 미국에서 들여온 물량은 476만t으로 전체 수입 물량의 95%가량을 차지했다. 미국산 수수는 중국에서 주로 동물사료로 쓰인다.

◆미국 콩도 반덤핑 조사받을 듯

그동안 중국 정부는 미국이 무역 제재에 나서면 이에 상응하는 보복 조치에 나설 것이라고 공언해왔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중국 당국자를 인용해 “중국은 트럼프 행정부의 ‘미국 우선주의’ 정책이 끼치는 무역피해에 보복할 준비를 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국은 올해 들어 중국을 겨냥한 통상압박을 한층 강화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22일 외국산 태양광 패널과 세탁기를 대상으로 한 세이프가드 발동을 최종 승인했다. 태양광 패널은 중국산을, 세탁기는 한국산을 겨냥했다. 미국이 세이프가드를 발동한 것은 2001년 이후 처음이다.

미국무역대표부(USTR)는 지난달 13일 지식재산권 침해를 이유로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 기업 알리바바의 개인 간(C2C) 온라인 쇼핑몰 타오바오를 비롯해 중국 인터넷 쇼핑몰 세 곳과 오프라인 매장 여섯 곳을 ‘짝퉁시장(악덕시장)’ 블랙리스트에 올렸다.

지난달 초엔 미국 외국인투자심의위원회(CFIUS)가 알리바바의 금융 자회사인 앤트파이낸셜이 미국 송금업체 머니그램을 인수하려 하자 안보 위협을 이유로 거부했다. CFIUS는 미 이동통신회사 AT&T가 미국에서 중국 화웨이의 스마트폰을 출시하려는 계획도 같은 이유로 승인하지 않았다. 미 국제무역위원회(ITC)는 중국의 알루미늄 합금 시트에 대한 반덤핑 조사와 상계관세 조사를 지속하기로 결정했다.

중국 상무부는 이에 “미국의 일방적인 보호무역 조치에 대항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방법을 동원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어 지난달 28일 미국에서 수입하는 화학제품에 적용해오던 반덤핑 관세 부과를 연장하겠다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중국 정부가 수수뿐 아니라 미국산 대두에도 비슷한 조치를 취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WTO에 제소되는 미국

이런 가운데 미국이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당한 사례가 최근 3개월간 크게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5일 WTO에 따르면 작년 11월부터 지난달까지 WTO 분쟁해결절차(DSU)에 접수된 무역분쟁 제소 건수는 모두 여섯 건인데 이 중 미국의 피소 건수가 네 건을 차지했다. 이전 9개월간 미국을 상대로 이뤄진 제소는 단 한 건에 불과했다.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재협상을 놓고 미국과 갈등을 빚고 있는 캐나다는 자국산 침엽수 목재 등을 겨냥한 미국의 반덤핑·상계관세 결정 및 부과 과정이 WTO 협정에 위반된다며 세 차례 연속 미국을 제소했다. 미국에 수출하는 냉동생선에 고율의 반덤핑 관세를 부과받은 베트남은 지난달 8일 소장을 냈다.

한국은 태양광 패널·모듈과 세탁기에 대한 세이프가드 발동과 관련해 7일 이후 미국을 제소할 방침이다. 주요 수출품인 바이오디젤에 상계관세를 부과받은 인도네시아도 WTO에 이의를 제기할 준비를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은 현재까지 WTO에서 134건의 제소를 당했으며 대부분 패소했다. 미국은 불리한 결정이 나오더라도 종종 이행하지 않았다. WTO로서는 판정을 강제하거나 미이행을 제재할 수단이 없다는 게 가장 큰 한계로 지적된다.

미국의 주요 타깃인 중국은 무역원활화협정(TFA) 지원을 늘리며 WTO와의 관계를 강화하고 있다. TFA는 통관수속 간소화 등으로 무역장벽을 사실상 없애는 것을 골자로 한 협정이다. WTO가 다자 무역규범을 정착시킨다는 취지에서 공들여 추진해온 프로젝트다. WTO는 이날 중국이 개발도상국과 저개발국의 TFA 이행을 돕기 위해 100만달러(약 11억원)를 기부했다고 밝혔다.

베이징=강동균 특파원 kd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