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세 열매' 따먹는 미국 직장인… 기업 절반 "임금 올렸다"
글로벌 경기 회복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감세정책에 힘입어 미국 기업의 임금 인상과 매출 증가가 두드러진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대기업들은 감세 발표 직후 직원들에게 보너스를 지급한 데 이어 임금 인상 계획까지 내놓고 있다. 최저 수준의 실업률에도 불구하고 임금과 물가가 오르지 않아 시장과 학계에 혼란을 줬던 수수께끼도 차츰 풀릴 것이란 기대가 나오고 있다.

◆美 기업 48% “임금 인상”

블룸버그통신과 USA투데이 등은 미국실물경제학회(NABE) 설문조사 결과를 인용, 미국 기업의 48%가 최근 3개월 동안 임금을 올렸다고 29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임금을 인상했다고 밝힌 기업 비율은 NABE가 해당 조사를 시작한 1982년 4월 이후 세 번째로 높다. 향후 3개월 내 임금을 인상하겠다는 기업도 58%였다. 설문에 답한 기업 패널 119명은 1인 기업, 중소·중견기업, 1000명 이상 대기업 등 다양한 기업군에 속해 있다.

임금 인상의 주 요인은 경기 회복이 유발한 인력 부족 현상이다. 응답자의 39%가 “2008년 7월 이래 경험 있는 인력을 찾는 것이 가장 어려워졌다”고 답했다. 우수 인재의 유출을 막기 위해 기업들은 더 많은 돈을 쓰고 있다. 이번 조사에서 임금을 깎았다고 답한 기업은 한 곳도 없었다. 패널들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수년간의 경기 회복으로 고용시장과 경기 모두 건실해진 것을 노동력 부족 현상의 원인으로 꼽았다.

지난 3개월 동안 회사 매출이 증가했다고 답한 기업도 47%에 달했다. 직전 분기 46%보다 1%포인트 증가한 수치다. 반대로 매출이 줄었다는 응답자는 소수에 불과했다. 이 같은 조사 결과는 지난해 4분기 경제성장률이 전년 동기 대비 2.6%(연율 기준·잠정치)를 기록했고, 지난해 실업률이 17년 만에 최저치(4.1%)로 떨어졌다는 정부 발표와 일맥상통한다. 지난해 2, 3분기의 3%대 성장에 비하면 다소 둔화되긴 했지만 경제학자들은 미국 경제가 15분기 연속 성장하는 등 경제가 양호한 상태라고 분석했다. 미국 경제매체 인베스터스비즈니스데일리는 이 설문 결과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의 감세 정책으로 촉발된 임금 인상과 상여금, 신규 투자 등이 경제 성장을 뒷받침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트럼프 감세정책에 기업 ‘환호’

트럼프 대통령이 추진한 법인세 인하 정책의 혜택은 직장인들에게도 돌아가고 있다. 미국 정부가 법인세 최고세율을 35%에서 21%로 낮추자 기업들은 현금 보따리를 풀고 있다. 법인세 인하로 미국 기업이 지급하기로 결정한 보너스 규모만 20억달러(약 2조1330억원)에 달한다.

AT&T, 월마트, 애플, 월트디즈니, 스타벅스 등 미국 대기업은 감세정책에 화답해 연이어 임금 인상과 보너스 지급 계획을 밝혔다. 애플은 해외에 갖고 있던 현금 2500억달러를 미국에 들여오면서 세금 380억달러를 납부하기로 했다. 임직원 12만 명에게는 각각 2500달러를 지급한다.

미국 백악관과 공화당은 “이 같은 변화야말로 낙수효과를 확실히 보여주는 것”이라면서 감세의 유용성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기업들의 현금 인센티브는 임금 인상보다 일회성인 상여금이 많고, 임금 인상은 감세보다 완전 고용상태로 인한 것이란 반대 주장도 있다.

◆필립스 곡선 수수께끼 풀릴까

미국 통화당국과 경제학계는 실업률이 최저 수준인데도 임금과 물가가 오르지 않는 딜레마를 해석하기 위해 애썼다. 이 때문에 실업률과 임금·물가는 반비례한다는 ‘필립스 곡선’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주장까지 제기됐다. 필립스 곡선 무용론을 제기하는 학자들은 “물가가 오를 것을 미리 걱정해 기준금리를 인상하는 것은 앞뒤가 바뀐 정책”이라는 비판을 내놓고 있다. 반면 재닛 옐런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은 필립스 곡선을 옹호하는 대표적 인물이다.

글로벌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최근 “경제 성장으로 실업률이 꾸준히 내려가면 임금 인상에 가속이 붙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국 기업들이 임금을 인상하고 있다는 신호가 나오면서 Fed는 소비자물가 상승률 목표치(2.0%) 달성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박상익 기자 dir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