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유럽연합(EU)과의 교역 관계는 매우 불공정하고, 이런 관계는 결국 EU에 큰 해가 될 것”이라며 무역보복을 경고했다. 연초 한국과 중국 등을 정조준했던 미국 보호무역주의의 ‘칼끝’이 이번엔 EU, 특히 EU의 최대 경제국인 독일을 겨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회복세를 보이고 있는 세계 경제에 미국발(發) 통상전쟁이라는 폭풍우가 몰아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번엔 유럽에 칼끝 겨눈 트럼프… "EU, 불공정 교역으로 큰 손해 볼 것"
◆“미국에 불공정, 불공평해”

트럼프 대통령은 28일(현지시간) 방영된 영국 민영방송 ITV와의 인터뷰에서 “미국과 EU는 많은 문제점을 갖고 있고, 이는 무역 관점에서 뭔가 아주 큰 것(분쟁)으로 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인터뷰는 지난 25일 스위스 다보스포럼 행사장에서 이뤄졌다.

그는 행사 참석 직전 수입 세탁기와 태양광 패널에 대해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조치)를 발동, 30~50%에 이르는 관세 부과를 결정했다. 한국과 중국을 겨냥한 수입 규제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인터뷰를 통해 “우리 상품은 (EU에) 수출하기가 매우 어려운데 그들은 자국 상품을 아무런 세금 없이 또는 아주 적은 세금을 물고 미국에 보낸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EU뿐 아니라 그런 나라가 많지만 EU는 특히 미국에 매우 불공평하다”며 “그것은 결국 그들에게 아주 심한 해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트럼프 대통령이 EU의 불공정 무역에 대한 보복을 암시했다”고 보도했다. 미국은 2016년 기준으로 EU와의 상품·서비스 교역에서 약 930억달러의 적자를 냈다. 중국(약 3100억달러)에 이어 두 번째로 큰 규모다. 적자 규모는 2015년까지 지속적으로 확대돼 왔다.

무역 불균형이 커지면서 분쟁도 늘고 있다. 미국과 EU는 현재 항공산업 보조금 지급과 가금류 수출 등을 놓고 세계무역기구(WTO) 분쟁조정기구에서 맞붙고 있다. 미국이 30% 관세를 매긴 태양광 패널 수입품의 2%는 EU산이다. EU 측은 “미국의 조치(세이프가드 발동)가 유럽 기업들의 수출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면 확고하고 적절하게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세이프가드·약(弱)달러 동원

미국의 대(對)EU 무역적자액 중 독일이 73%(2016년 기준)를 차지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전부터 EU가 독일의 ‘환율조작 수단’이라고 지적해왔다. 독일이 마르크화 대신 유로라는 통화로 수출가격 경쟁력을 유지하며 미국과의 교역에서 막대한 흑자를 내고 있다고 ‘공격’했다.

FT는 미국이 세이프가드라는 ‘극단적’ 수단을 동원하고 ‘약(弱)달러 선호’ 발언을 통해 글로벌 통화전쟁 가능성까지 열어놓았다며 이는 회복기 세계 경제에 큰 부담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지난 24일 스티븐 므누신 미 재무장관의 약달러 발언 직후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와 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 등이 직접 나서 국제사회 우려를 전달하며 발언 자제를 요구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미국 싱크탱크인 전략국제연구센터(CSIS)의 매튜 굿맨 연구위원은 “미국의 통상 및 환율 분야 조치가 앞으로 세계 경제에 미칠 파장을 가볍게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평가했다.

◆중국 “미국에 쓸 몽둥이 많아”

중국 관영 환구시보는 28일 사설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다보스포럼 연설과 관련, “미국 우선주의는 노골적인 경제민족주의일 뿐이며 이를 세계화로 치장하지 말라”고 비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6일 연설에서 “미국 우선주의는 미국 고립주의가 아니다”고 말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자유무역엔 공정한 룰이 갖춰져야 한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미국이 무역전쟁을 준비해야 한다는 신호를 중국에 보낸 것”으로 해석했다.

중국 상무부는 28일 미국과 유럽산 에틸렌계 화학제품에 부과해 온 반덤핑 관세에 대한 재심 신청을 승인했다. 앞으로 이들 제품에 반덤핑 관세를 계속 부과하겠다는 뜻으로, 미국의 대중 무역보복에 대응하는 맞불 성격이라고 중국 언론들은 해석했다. 환구시보는 “중국은 미국이 저지르는 잘못을 놔두지 않을 것”이라며 “중국은 미국에 휘두를 몽둥이가 아주 많다”고 경고했다.

워싱턴=박수진/베이징=강동균 특파원 ps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