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선전시 난산취(南山區) 타이쯔완(太子灣)에는 작년 말 기념비적인 시설이 문을 열었다. ‘디자인 소사이어티(設計互聯).’ 중국 최초의 디자인 박물관이다. 범선에서 모티브를 얻은 4층 높이 건물에 연면적 7만1000㎡ 규모를 자랑한다. ‘디자인이란 인류에게 무엇인가’를 묻는 ‘디자인의 가치’ 전시회가 열리고 있었다.

박물관은 이곳을 ‘창의 발전소’ ‘혁신 문화 플랫폼’이라고 소개했다. 중국인에게 디자인 싱킹(thinking)을 자극하고 혁신 아젠다를 던져 중국 경제 발전에 기여하겠다는 비전을 담았다.

중국의 개혁·개방 이후 ‘시간은 돈, 효율은 생명…’이란 개발 슬로건이 오늘의 선전을 만들었다면 디자인 소사이어티는 선전의 미래를 보여준다. 세계인이 앞다퉈 사고 싶어 하는 고급 이미지 제품을 생산하는 중국 말이다. 기술은 궤도에 올랐으니 디자인으로 승부를 걸 때가 왔다는 것이다. 카피캣(모방자)이 아니라 이노베이터(혁신가), ‘메이드 인 차이나’에서 ‘크리에이티드(created) 인 차이나’로 도약하겠다는 다짐이다.

그 가능성은 같은 난산취에 있는 세계 1위 무인항공기(드론)업체 DJI 본사에서 확인할 수 있다. 불과 6년 전만 해도 DJI 드론(팬텀1)은 뼈대만 앙상한 장난감 헬기 수준이었다. 그러던 것이 이제는 세계 드론 이용자들의 탄성을 자아내는 매끈하고 멋진 디자인으로 변신했다. DJI 전시관의 한 방문객은 “전문가용 인스파이어가 이륙할 때 접혀 있던 날개가 펴지며 상공으로 올라가는 것을 보면 마치 한 마리 새가 날아오르는 것 같다”며 엄지를 들어보였다.

공간 및 건축디자인으로 눈을 돌리면 ‘제조기지’ 선전을 ‘디자인 허브’로 바꾸려는 선전시 정부의 노력을 엿볼 수 있다. 4년 전 문을 연 바오안국제공항 신청사가 대표적이다. 벌집 모양으로 뚫린 천장과 흰색의 현대적 디자인이 입국장에 들어선 외국인을 놀라게 한다. 바오안도서관도 구멍이 뻥뻥 뚫린 은색의 특이한 외관으로 눈을 즐겁게 한다. 도심에 외계 우주선이 착륙한 듯한 모양의 OCT박물관도 선전의 명물이 됐다. 선전에는 산업디자인 관련 회사만 6000여 개에 이른다. 선전디자인협회 관계자는 “산업디자인 분야의 연간 생산액, 인재 및 기업 규모, 디자인업체 수 등에서 선전이 중국 전체의 절반을 차지한다”며 “독일 if디자인, 레드닷 등의 상도 선전 기업들이 휩쓴다”고 설명했다. 선전시에 있는 하얼빈공대 분교는 스위스 취리히대와 함께 디자인스쿨을 운영하기로 하고 시설을 건립 중이다.

선전의 디자인 드라이브는 중국의 다른 도시로 확산되고 있다. 중국 전역에서 매년 40만 명의 디자인 전공자가 쏟아지는 것도 이 영향이 크다. 미니멀하고 심플한 외관의 샤오미 디자인은 갑자기 나온 게 아니다. 애플의 크리에이티브 임원을 수석 UX디자이너로 영입한 화웨이는 조약돌 같은 둥근 원형의 ‘아너 매직’ 스마트폰 시리즈로 세계를 놀라게 했다. 김봉진 우아한형제들 대표는 “선전 벤처기업의 디자인 개발 능력이 중국의 다른 굴지 기업으로 확산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했다.

디자인 소사이어티는 연중 하루도 쉬지 않는다. 일~목요일은 오후 10시, 금·토요일은 오후 10시30분까지 문을 연다. 프로젝트가 있으면 몇날 며칠이고 밤을 새우는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이 즐비한 도시여서 늦게까지 개방하는 것이다. 하루의 분초를 쪼개 쓰며 밤을 낮 삼아 일하는 선전 기업과 창업자들의 제품이 세계인의 마음을 사로잡을 날도 머지않았다.

선전=장규호 문화부장 danielc@hankyung.com

한경 産·學·言 특별 취재단

◆스타트업계=김봉진 우아한형제들 대표, 이효진 8퍼센트 대표, 임정욱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센터장, 구태언 테크앤로 대표변호사, 류진 우아한형제들 이사

◆서울대=박희재·차석원 기계항공공학부 교수, 이광근 컴퓨터공학부 교수

한국경제신문=차병석 편집국 부국장, 장진모 정치부장, 박준동 금융부장, 장규호 문화부장, 강동균 베이징특파원, 김동윤·노경목·이승우·김범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