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3일(현지시간) 미국무역대표부(USTR)에 세탁기, 태양광 패널같이 자국 산업 보호조치가 필요한 품목이 더 있는지 살펴보라고 지시했다. 월풀 등 미 기업들의 요청을 받아들여 16년 만에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조치) 발동을 결정한 지 하루 만이다. 철강과 알루미늄, 자동차를 다음 대상으로 겨냥한 것으로 해석됐다. 의회 일각에서는 세이프가드 발동으로 인한 무역분쟁 등을 거론하며 트럼프 대통령의 결정을 무력화할 입법 필요성을 주장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많은 것을 지켜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오후 백악관에서 수입 세탁기와 태양광 패널에 대한 세이프가드 발동 포고문에 서명했다. 이 자리에서 “오늘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USTR 대표에게 이것뿐 아니라 다른 품목에도 세금 부과를 요구하는 업계의 논의가 있는지를 살펴보고 계속 지원하라고 지시했다”고 말했다. 앞으로 자국 업체가 수입품으로 인한 고통을 호소하면 얼마든지 세이프가드 발동을 추가로 검토할 수 있다는 의미다.

"월풀 같은 불만 기업 더 찾아보라"… 트럼프, 제2·제3 세이프가드 예고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 연간 120만 대를 넘는 수입 세탁기에 대해 3년간 40~50%(120만 대 이하는 16~20%), 발전량 2.5GW를 초과하는 태양광 패널(셀·모듈 포함) 제품엔 4년간 15~30%의 관세를 부과하기로 결정했다.

KOTRA는 24일 발간한 ‘2018년 상반기 대한(對韓)수입규제 동향 전망’ 보고서에서 앞으로 미국의 통상 화살은 철강과 자동차에 집중될 것으로 분석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수입 철강과 알루미늄에 세이프가드를 발동할지 묻는 말에 “지금 보고 있다. 우리는 많은 것을 지켜보고 있다”고 답해 수입규제 대상이 예상보다 더 확대될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했다.

◆“효과 크다” vs “부작용 많다”

트럼프 대통령은 세이프가드 효과를 자평했다. 서명식에서 “우리의 조치는 미국에서 일자리를 창출해낼 것”이라며 “LG전자와 삼성전자가 바로 여기 미국에 주요 세탁기 제조공장을 짓겠다는 최근 약속을 완수하는 강력한 유인책을 제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우리가 이것(세이프가드 발동 검토)을 하지 않았다면 그들은 결코 (미국에 공장을 지으려) 결정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미국 입맛에 맞는 개정을 압박하려는 듯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은 재앙적인 협정”이라고 언급했다.

그러나 세이프가드라는 ‘칼’을 휘두르는 정책의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많다. 마이클 블룸버그 전 뉴욕 시장은 트위터에 “태양광 패널에 최고 30% 관세를 부과하면 이를 수입해 쓰는 미국 업계에서 일자리가 없어지고 전기료는 높아질 것”이라며 “의회는 미국 노동자와 소비자를 위해 정부 결정을 뒤엎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미국 태양광 패널 설치업자로 구성된 태양에너지산업협회도 “관세 부과로 수입제품 가격이 올라가면 그만큼 수요가 줄어들 것”이라며 “올해 2만3000개 일자리가 사라지고 태양광 분야에서 수십억달러의 투자가 지연되거나 취소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린지 그레이엄 상원의원(공화당)은 “사람들이 (세이프가드 발동에 대해) 우려하고 있지만 통일된 의견은 없다”며 “오늘(23일) 의원 오찬모임에서는 대통령의 결정을 뒤집을 입법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왔다”고 전했다.

◆다보스 투자 유치 ‘총출동’

블룸버그통신은 트럼프 대통령이 25, 26일 스위스 다보스포럼 참석 직전에 세이프가드를 발표한 것은 앞으로 해외로 나가는 미국 기업을 어떻게 다룰지 메시지를 분명히 전한 것으로 해석했다.

게리 콘 백악관 국가경제보좌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다보스포럼에서 미국의 경제적 이익을 위한 ‘최고 판매원(salesperson)’이 되는 것을 목표로 한다”며 “감세 정책과 규제 완화로 미국이 기업하기 좋은 곳이라는 점을 역설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도착 첫날 유럽 기업인들을 초청해 만찬을 연다. 이번 행사에는 트럼프 대통령뿐 아니라 존 켈리 백악관 비서실장, 허버트 맥매스터 국가안보보좌관, 콘 보좌관, 렉스 틸러슨 국무·스티븐 므누신 재무·윌버 로스 상무·알렉스 아코스타 노동장관, 라이트하이저 대표 등 백악관과 행정부 수뇌부가 출동해 투자유치 활동을 펼친다.

워싱턴=박수진/뉴욕=김현석 특파원 ps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