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허그룹(力合科創集團)이 투자한 400여 개사 중 10%가량이 상장에 성공했습니다.”

지난 16일 중국 선전 난산취 선전칭화대과기원에 자리잡은 리허그룹 빌딩 로비. 시훙빙 리허그룹 상무는 40여 개사의 로고와 종목코드번호가 쓰인 벽면을 가리키며 자랑스럽게 말했다. 1999년 문을 연 리허그룹은 선전칭화대과기원이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에 투자하기 위해 설립한 벤처캐피털(VC)이다. 선전칭화대과기원은 선전시 정부와 칭화대가 절반씩 출자했다. 정부와 대학, 산업계의 산학연(産學硏) 삼각동맹이 어떻게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내는지 보여주는 모범사례로 손꼽힌다.
한국경제신문의 산·학·언 특별취재단이 지난 15일 중국 선전의 화웨이 본사 전시관을 둘러본 뒤 4차 산업혁명에 대해 토론하고 있다. 선전=김범준 기자 bjk@hankyung.com
한국경제신문의 산·학·언 특별취재단이 지난 15일 중국 선전의 화웨이 본사 전시관을 둘러본 뒤 4차 산업혁명에 대해 토론하고 있다. 선전=김범준 기자 bjk@hankyung.com
“투자 실패해도 책임 묻지않는다”

펑지에 리허그룹 부회장은 “1980년대만 해도 선전의 주력 산업은 단순 제조업이었다”며 “인재와 기술을 선전으로 끌어들여 하이테크산업을 발전시키기 위해 선전시가 칭화대와 함께 선전칭화대과기원을 설립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우수한 기술을 가진 개인이나 팀을 스타트업으로 육성해 시장에서 성공하도록 돕는 것이 리허그룹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리허그룹의 회사당 투자 규모는 1000만~2000만위안(약 17억~34억원)으로 스타트업 초기 단계에 집중하고 있다. 투자 대상이 선정되면 지분의 20%가량을 주식으로 취득하는 형식이다. 투자 기간은 평균 7년이다. 시훙빙 상무는 “인력과 기술력, 목표로 삼는 시장 등 세 가지를 중점적으로 보고 투자한다”며 “프로세스에 따라 집단 결정을 통해 투자하기 때문에 실패하더라도 책임을 묻지 않는다”고 말했다. 기업에 필요한 기술이 있으면 선전칭화대과기원이나 칭화대의 연구진과 연결해주기도 한다. 칭화대의 연구 역량으로 기업을 업그레이드하는 ‘종합 플랫폼’ 역할을 하는 셈이다.

투자를 통해 벌어들인 수익은 원칙적으로 칭화대와 선전시 정부가 절반씩 나눠가져야 하지만 모든 수익은 칭화대가 관리한다. 이사회에도 선전시는 참여하지 않는다. 펑지에 부회장은 “선전시는 돈을 벌려고 투자하는 게 아니다”며 “칭화대의 과학기술을 선전으로 가져와 더 많은 기업을 세우는 것이 목적”이라고 했다.

“제품과 서비스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 조성”

리허그룹은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 ‘리허엑스(X)’도 운영하고 있다. 스타트업이 집중해서 제품이나 서비스를 내놓을 수 있도록 사무 공간은 물론 법률, 회계, 펀드 등 다양한 지원을 한다. 현재 블록체인,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등 첨단 기술 분야의 기술을 갖춘 30여 개사가 입주했다. 통상 6개월 동안 집중 육성 과정을 거친다. 지난해 11월에는 외국 기업이 입주할 수 있는 공간도 별도로 마련했다. 루샨 리허엑스 최고운영책임자(COO)는 “보통 6개월이면 기업의 시장성과 성과를 평가받기에 충분한 기간”이라며 “성과가 없을 경우 다른 방식을 찾아 피봇(방향전환)을 한다”고 말했다.

이들은 한결같이 중국 정부의 관용적 태도가 산학 협력 활성화의 원동력이 됐다고 강조했다. 펑지에 부회장은 “인터넷 분야에서 중국 기업이 잇따라 좋은 성과를 내자 정부도 스타트업 도전을 환영하고 기존 제도와 다소 맞지 않는 부분에서도 규제를 유보하고 있다”며 “신기술을 갖춘 팀들이 제품과 서비스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다”고 설명했다.
칭화대와 손잡고 투자회사 만든 선전시 "대학 첨단기술로 더 많은 기업 세우는 게 목표"
선전=이승우 기자 leesw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