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욱의 일본경제 워치] AI가 장관 국회답변 작성해봤더니
정치인과 관료의 화법은 자주 은유와 비유, 얼버무림 등으로 뜻이 모호할 경우가 많습니다. 인공지능(AI)은 과연 ‘구렁이 담 넘듯’하는 관료의 발언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까요.

일본에서 AI가 장관의 의회답변 초안을 만드는 실험을 실시했다고 합니다. 정답이 분명한 퀴즈나, 명확한 규칙 아래서 경우의 수를 계산하는 바둑과 달리 AI가 ‘정치적 언어’ 분야에선 고전을 면치 못했다고 합니다. 국회의원과 장관의 애매모호한 발언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탓이라고 합니다.

마이니치신문에 따르면 일본 경제산업성이 지난해 의회 답변을 AI에 초안 작성을 맡기는 실증실험을 한 결과, 장관이나 관료, 국회의원의 모호한 발언을 이해하는 능력이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번 실험은 1800만엔(약 1억6990만원)의 비용을 들여 컨설팅 회사에 위탁해 실시했다고 합니다. 이 회사가 개발한 AI언어 처리 서비스를 이용해 과거 5년 치 국회 회의록을 기본 자료로 삼았습니다. 국회의원들이 비슷한 질문을 하면 과거 유사질문과 답변을 기반으로 장관답변 초안을 작성토록 했습니다.

AI가 작성한 답변은 2주 동안 일본 공무원 80명이 실험 종료 후 분석 작업을 진행했다고 합니다. 답변수준이 ‘별로’ ‘제대로 답변 못했다’ 등 부정적인 평가를 합하면 전체의 48%가 AI의 답변에 대해 ‘목표에 미달했다’는 평을 내렸다네요.

AI가 ‘법인 세율’이나 ‘보조금’ 같은 정책용어를 문맥에 맞게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고, ‘노력’ ‘원활’ 같은 일반적인 단어에 주력하면서 과거의 비슷한 질문을 제대로 찾는 것도 실패했다고 합니다. 과거 장관의 답변이 ‘예스’나 ‘노’같은 명확한 용어가 아니라 정책실행 여부에 대해 애매모호하게 대답한 것도 많아서 AI가 어떻게 답변해야 할지 판단하지 못한 것도 많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 같은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AI는 철야로 답변을 작성할 수도 있고, 방대한 데이터를 순식간에 처리할 수 있어 업무효율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여야 대립으로 밤늦게 질의가 올 경우, 답변 작성에 큰 도움이 될 것이란 설명입니다.

일본 정부는 부족한 점을 보완해 국정에 AI를 도입하는 방안을 적극 추진키로 했다고 합니다. 이러다가 언젠가는 AI가 장관마저 대체해 버리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도쿄=김동욱 특파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