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의 마이크로프로세서 업체인 인텔이 최근 20여년간 만들어 온 칩 대부분에 심각한 설계 취약성이 있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창사 50년만에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인텔은 1968년 고든 무어와 로버트 노이스가 창립한 이래 세계 반도체·정보통신기술(ICT) 산업을 대표하는 미국 실리콘밸리의 상징적 기업으로 군림해 왔다.

특히 1980년대 이래로 지금까지 PC용 마이크로프로세서에서는 독보적 위치를 수십년간 유지하고 있다.

이 회사는 1992년부터 작년까지 매출 기준으로 세계 최대 반도체 기업이었으며, 메모리 반도체의 호황과 스마트폰 등 모바일 부문의 성장으로 삼성전자 DS부문에 에 1위 자리를 내준 후에도 여전히 비메모리 분야에서는 최강자의 지위를 누리고 있다.

인텔은 1991년 시작한 '인텔 인사이드'라는 마케팅 캠페인을 통해 소비자들에게 자사의 PC용 마이크로프로세서가 업계의 표준이라는 인상을 강하게 심어 줬으며 지금도 PC용 중앙연산장치(CPU) 시장에서 유일한 라이벌인 AMD를 약 75%대 25%로 압도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1995년 이래 나온 거의 모든 인텔 CPU의 설계에 '멜트다운'(Meltdown)과 '스펙터'(Spectre)는 이름이 붙은 보안 취약성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인텔은 창사 이래 최대의 위기를 맞게 됐다.

이 중 스펙터는 인텔뿐만 아니라 AMD와 ARM의 프로세서에도 있지만, 인텔이 라이벌들보다 훨씬 큰 이미지 타격을 입은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게다가 인텔의 브라이언 크르자니크 최고경영자(CEO)가 본인이 보유한 인텔 주식 2천400만달러(255억원)어치를 작년 가을에 팔아치운 사실이 드러나면서 더욱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다.

인텔이 구글로부터 멜트다운과 스펙터 보안취약점을 통보받은 것은 이보다 몇 달 전인 작년 6월이었다.

제품의 보안 취약점이 알려져 주가에 영향을 미치기 전에 경영진이 '발을 뺀' 것이라는 의혹이 제기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번 사태 전까지 인텔이 겪었던 최대 위기는 1994년 일부 초기 버전 펜티엄 프로세서의 설계가 잘못돼 그릇된 연산 결과가 나오는 경우가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을 때였다.

당시 인텔은 "대부분의 사용자에게 문제가 없다"며 덮으려는 태도를 보였다가 여론의 질타를 받고 전량 교환을 해 주는 쪽으로 방침을 바꿨다.

그러나 이번 사태는 일부 제품이 아니라 전체 제품에 문제가 있는 사실이 드러났을뿐만 아니라 경영진이 이를 덮고 개인적 이익을 취하려고 했다는 윤리적 의혹까지 겹친 사안이어서 24년 전 펜티엄 위기보다 훨씬 심각하다.

인텔 주가는 이 사태가 알려진 3일(현지시간) 미국 나스닥에서 3.39% 하락한 반면, 라이벌인 AMD의 주가는 5.19%가 올랐다.

인텔에 대한 소비자들과 투자자들의 불신이 매우 크다는 점을 보여 주는 대목이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