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지리자동차가 세계 자동차 시장을 겨냥한 거침 없는 인수합병(M&A) 행진을 벌이고 있다. 스웨덴 볼보자동차의 승용차 부문을 인수한 데 이어 상용차 부문 최대주주 자리까지 꿰찼다. 올 들어 지리차는 네 건의 굵직한 해외 M&A를 성사시켰다.

◆중국 ‘자동차 굴기’ 선봉장 역할

27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에 따르면 지리차는 유럽 최대 행동주의 헤지펀드 세비안캐피털로부터 볼보 트럭과 버스를 생산하는 볼보AB 지분 8.2%를 사들였다. 인수 금액은 32억4000만달러(약 3조4860억원)다. 지리차의 역대 M&A 중 최대 규모다. 볼보AB 의결권이 15.6%로 높아져 지리차가 최대주주에 올랐다.
'자동차 제국' 꿈꾸는 중국 지리차… 볼보 승용차 이어 트럭도 품었다
볼보AB는 1999년 65억달러에 승용차 제조 부문을 미국 포드자동차에 매각했다. 이후 볼보는 두 개의 브랜드로 분리됐다. 지리차는 2010년 3월 포드로부터 18억달러에 볼보 승용차를 인수했다. 지리차가 볼보의 상용차 부문까지 장악함에 따라 볼보가 다시 하나의 브랜드로 통합될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지리차는 중국 정부가 추진하는 ‘자동차 굴기’의 선봉장 역할을 하고 있다. 올 들어 중국 기업의 1억달러 이상 자동차 분야 해외 투자는 모두 아홉 건으로, 금액 기준 90억달러에 육박한다. 이 중 지리차가 네 건이며 금액으로는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지리차는 지난 5월 말레이시아 국영 자동차 회사 프로톤홀딩스 지분 49.9%를 인수하고, 프로톤이 보유하고 있던 영국 스포츠카 브랜드 로터스 지분 51%도 매입했다. 7월엔 ‘하늘을 나는 자동차(플라잉카)’를 개발한 미국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 테라푸지아도 사들였다.

◆글로벌 자동차 기업으로 부상

이번 지분 인수로 지리차는 글로벌 자동차 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한 중요한 계기를 마련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2010년 볼보 승용차를 인수했을 때만 해도 “뱀이 코끼리를 삼켰다”며 M&A가 실패로 귀결될 것이란 시각이 많았다.

하지만 지리차는 대대적인 투자를 단행해 몸집을 키우면서도 볼보의 브랜드 가치를 훼손하지 않았다. 생산 라인 전체를 바꾸고, 소형차 라인업도 늘렸다. 출시 후 10년간 변화가 없어 외면받던 볼보의 주력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XC90’은 완전히 새로운 모델로 탈바꿈하며 인기를 끌었다.

리수푸 지리차 회장은 볼보의 기업문화도 과감히 받아들였다. 볼보가 내세우는 3대 가치는 품질, 안전, 환경보호인데 일명 ‘볼보웨이’로 불린다. 저가 차량만 만들어 오던 지리차엔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올해 3분기 볼보 매출은 488억8000만크로나(약 6조5770억원)로 작년 같은 기간보다 18.4% 늘었다. 순이익도 89.3% 증가한 25억1300만크로나에 달했다.

지리차는 볼보AB를 통해 상용차 시장에서의 경쟁력도 강화할 수 있을 것이란 전망이다. 볼보 승용차 인수로 지리차는 볼보가 80여 년간 쌓아온 기술과 인력을 확보했다. 완성차 및 핵심부품 연구개발(R&D) 노하우에다 3800명에 이르는 인재까지 얻었다. 볼보의 글로벌 유통망도 품에 안았다. 인수 당시 볼보는 세계 100여 개 국가와 지역에 약 2400개 판매망을 갖추고 있었다.

◆중국시장에서도 질주하는 지리차

1986년 저장성 황옌에서 냉장고 제조사업을 시작한 리 회장은 1997년 국유기업 지리차를 인수하면서 자동차 사업에 뛰어들었다. 지리차의 주력 사업모델은 저가 차량을 생산해 안전과 배기가스 배출 기준이 낮은 국가로 수출하는 것이었다. 중국 내에서도 후발 자동차 기업이던 지리차는 볼보를 인수한 뒤 성장가도를 달리고 있다.

지난달까지 중국 승용차 시장에서 지리차의 판매량은 109만4300대로 토종 브랜드 중 2위를 차지했다. 올해 상반기 매출은 394억2300만홍콩달러(약 5조4010억원)로 작년 상반기보다 두 배 이상 늘었다. 순이익 역시 43억4400만홍콩달러로 두 배 이상 증가했다. 홍콩증시에 상장된 지리차 주가는 지난 27일 26.15홍콩달러로 작년 12월에 비해 세 배 이상으로 뛰었다.

지리차는 전기자동차와 자율주행차 투자도 확대할 계획이다. 8월 볼보와 차세대 전기차 개발을 위한 새로운 합작회사를 세웠다. 볼보는 2019년부터 순수 전기차와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차만 생산하겠다고 밝혔다.

WSJ는 “지리차가 보급형 세단부터 프리미엄, 럭셔리 승용차는 물론 상용차 부문까지 진출해 독일 폭스바겐을 연상시키는 브랜드 포트폴리오를 구성하기 시작했다”고 평가했다.

베이징=강동균 특파원 kd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