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양동맹(PA)이 아시아 국가 및 남미공동시장(메르코수르)과의 경제통합에 적극 나서고 있다. 지난 6월 말 콜롬비아 칼리에서 열린 제12차 PA 정상회의 후 미첼 바첼레트(칠레·왼쪽부터)·후안 마누엘 산토스(콜롬비아)·엔리케 페냐 니에토(멕시코)·페드로 파블로 쿠진스키(페루) 대통령이 손을 모아 단합을 과시하고 있다. PA 공식홈페이지
태평양동맹(PA)이 아시아 국가 및 남미공동시장(메르코수르)과의 경제통합에 적극 나서고 있다. 지난 6월 말 콜롬비아 칼리에서 열린 제12차 PA 정상회의 후 미첼 바첼레트(칠레·왼쪽부터)·후안 마누엘 산토스(콜롬비아)·엔리케 페냐 니에토(멕시코)·페드로 파블로 쿠진스키(페루) 대통령이 손을 모아 단합을 과시하고 있다. PA 공식홈페이지
# 지난 6월 말 콜롬비아의 휴양도시 칼리에서 열린 태평양동맹(PA) 제12차 정상회의에서는 싱가포르 뉴질랜드 호주 캐나다 4개국이 준회원국으로 지정됐다. 멕시코 콜롬비아 칠레 페루 4개 회원국이 곧 이들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하겠다는 뜻이다. 준회원국 가입을 강력히 희망한 한국은 제외됐다.

# 지난달 24일 브라질 외교부에서는 브라질·멕시코 외교장관급 회의가 열려 양국 간 무역협정(TA) 확대 관련 추가 협의가 진행됐다. 브라질과 멕시코는 중남미 경제블록의 양대축인 PA와 남미공동시장(메르코수르)의 ‘맏형격’ 나라들이다. 두 경제블록 간 통합을 위해 리더국들이 사전 물밑 교섭을 한 것이다.

◆우파정부들, 경제 통합에 의욕

‘부활하는 기회의 땅’ 중남미가 거대한 경제 통합 실험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 같은 움직임은 ‘핑크타이드(온건좌파 물결)’가 퇴조하고 각국이 신(新)우파 정권으로 갈아타는 흐름과 연관돼 있다. 자원에 의존한 포퓰리즘(대중인기영합주의) 경제정책에서 벗어나 개방과 수출을 통해 성장의 불씨를 찾으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경제 통합의 흐름은 크게 세 갈래다. 전통적인 ‘친(親)시장 경제 블록’ PA 4개국은 아시아 쪽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싱가포르 등을 준회원국으로 지정한 것은 첫걸음이다. 한국 중국 일본 등도 준회원 가입을 희망하고 있다.

폐쇄적 경제 통합체 성격의 메르코수르도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에서 우파정부가 들어선 이후 유럽연합(EU)과의 무역협정 체결에 발벗고 나섰다. 기업인 출신 마우리시오 마크리 아르헨티나 대통령이 논의를 주도하고 있다. 메르코수르와 EU 회원국들은 이달 초 벨기에 브뤼셀에서 협상했다. 중남미 언론은 “메르코수르-EU FTA 타결이 눈앞에 왔다”고 보도했다.

양국보 KOTRA 중남미본부장은 “PA 쪽은 미국의 보호무역 정책으로 인한 피해를 보완하기 위해, 메르코수르는 수출과 성장의 계기로 삼기 위해 경제 영토 넓히기에 나서고 있다”고 분석했다.
속도 내는 중남미 경제동맹·… 한국과 FTA는 '제자리 걸음'
◆‘한 지붕’ 시장통합 실험 활발

두 경제블록을 통합하는 논의도 불붙고 있다. PA 4개국과 메르코수르 5개국(브라질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파라과이 베네수엘라)을 합하면 인구 5억1600만 명, 국내총생산(GDP) 4조6000억달러의 세계 5위 경제공동체가 탄생한다. 인구는 유럽, GDP는 일본과 맞먹는 시장이다.

두 블록의 외교장관들은 지난 4월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각료회의를 열고 무역 확대와 신규시장 개방 노력에 합의했다. 이달 초 같은 도시에서 열린 세계무역기구(WTO) 각료회의 때는 회원국 정상들이 한자리에 모여 통합을 논의했다. 지우마르 마지에로 브라질 상파울루대(USP) 경제경영대학(FEA) 교수는 “두 블록은 상호 보완적 성격을 갖고 있지만 구체적인 협상단계로 들어가면 멕시코와 브라질이 공산품, 아르헨티나와 칠레가 포도산업을 놓고 맞붙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한국은 칠레(2004년) 페루(2011년) 콜롬비아(2016년)와 FTA를 맺었다. 중미 5개국(코스타리카 엘살바도르 니카라과 온두라스 파나마)과도 지난해 협상을 타결짓고 발효를 앞두고 있다.

◆브라질 멕시코와는 FTA 무산

그러나 중남미 경제의 80%를 차지하는 브라질 멕시코와는 FTA를 체결하지 못했다. 멕시코는 현지 재계의 반발이 변수다. 그 벽에 가로막혀 2005년 협상 개시 선언 후 12년째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하고 있다.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도 걸림돌이다. 멕시코 외교부의 블라디미르 바스케스 아시아태평양 담당 서기관은 “멕시코의 최우선 순위는 NAFTA 재협상”이라며 “한국과의 FTA 등은 후순위”라고 말했다.

브라질이 속한 메르코수르와의 FTA도 2005년 공동연구를 시작한 이후 이렇다 할 진전이 없다. 메르코수르 회원국들은 다른 나라와 FTA 협상을 시작할 때 다른 회원국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이달 초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만난 한 한국 정부 관계자는 “한국과 메르코수르 간 FTA 협상 개시 선언이 곧 있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한국이 중남미 최대 경제 대국 브라질 시장을 뚫을 역사적 계기를 갖게 된다는 희망 섞인 소식이었다. 그러나 선언은 무산됐고, 정부는 설명이 없다.

절삭공구업체 한국야금(KORLOY)의 김달현 상파울루 법인장은 “브라질은 복잡한 노무 관리와 관료주의, 천장 같은 물류비라는 리스크가 있지만 가장 큰 부담은 관세”라며 “한·메르코수르 FTA로 관세 부담이 줄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브라질은 자국 제조업 보호를 위해 수입품에 최고 35% 관세를 매기고 있다.

상파울루·리마·산티아고·보고타=박수진 특파원 ps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