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자금 지원으로 건설한 니카라과 후이갈파시(市) 상수도 시설에서 관계자들이 정수 전 물과 정수 후 수돗물을 비교 설명하고 있다.  /후이갈파=박수진 특파원
한국의 자금 지원으로 건설한 니카라과 후이갈파시(市) 상수도 시설에서 관계자들이 정수 전 물과 정수 후 수돗물을 비교 설명하고 있다. /후이갈파=박수진 특파원
니카라과 수도 마나과에서 차로 동쪽으로 3시간 반을 달려 도착한 촌탈레스주(州) 후이갈파시(市). 이곳은 8년 전만 해도 7만 명 주민이 1주일에 하루만 식수를 공급받던 곳이었다. 2~5월 건기에는 상수원인 리오페레호가 말라 수돗물 공급이 끊겼다. 주민들은 우물을 파거나 영세사업자가 운영하는 물차에서 식수를 사먹어야 했다.

지난 14일 방문한 후이갈파시 산타클라라구(區) 정수장에서는 맑고 깨끗한 물이 쏟아져나오고 있었다. 27㎞ 떨어진 니카라과호에서 끌어온 물을 하루 24시간 정수해 인근 가정에 공급하는 곳이다.

니카라과 상하수도공사(ENACAL)의 페르난도 플로레스 촌탈레스주 담당 국장은 “후이갈파시의 역사는 정수장 확장 건설 전후로 나뉜다”며 “한국과 더 많은 사회간접자본(SOC) 구축사업을 진행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중남미 인프라 수요 3조달러… "후발주자 한국, 기술력 좋다"
인프라 건설 잠재력 커

한국은 후이갈파시 정수장 확장사업(6000만달러)을 포함해 니카라과에서 총 12개 SOC사업을 지원하고 있다. 대외경제협력기금(EDCF)을 통한 총 지원 금액은 3억7000만달러에 이른다.

이종현 한국수출입은행 니카라과 사무소장은 “후이갈파시 정수장 건립지원 사업은 대표적인 EDCF 성공 사례”라며 “한국 기업의 중남미 SOC 시장 진출에 밑거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니카라과 등 6억4000만 명 ‘라티노의 땅’ 중남미는 인프라 낙후지역으로 꼽힌다. 1980년대 외환위기 이후 SOC 건설에 거의 신경 쓰지 않았기 때문이다. 2000년대 들어 풍부한 원자재 가격 상승에 힘입어 중남미에 재원이 쌓이면서 투자 붐이 일었지만 SOC를 건설해야 할 ‘미개척 지대’가 여전히 많다.

지역별로 보면 중남미는 남아시아 다음으로 인프라 갭(인프라 수요-인프라 투자)이 크다. 중남미 각국 경제가 연평균 3% 성장하려면 연간 1410억~2910억달러에 이르는 인프라 투자가 필요하지만 투자금액은 410억~1000억달러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인프라 갭이 연 1000억~1910억달러에 달한다. 미주개발은행(IDB) 등 국제기구들은 앞으로 적어도 3조달러의 투자가 필요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평판 좋으나 자본력 약해

이 같은 중남미 SOC 시장을 스페인과 브라질 이탈리아 기업이 장악하고 있다. 미국(2014년 기준 점유율 14.4%)과 중국(12.9%) 기업이 가세해 뒤쫓고 있다. 한국은 후발주자다. 황기상 KOTRA 파나마 무역관장은 “출발이 늦었지만 길이 없는 건 아니다”고 말했다.

한국은 중남미 SOC 건설시장 곳곳에서 평판이 좋다. 니카라과(후이갈파시 정수장)뿐 아니라 파나마(파나마운하 확장공사) 칠레(앙가모스 석탄화력발전소) 등지에서 우수한 기술과 깔끔한 공사로 ‘판타스티카 코레아(한국인들 멋져요)’라는 환호를 받았다.

마르셀리누 하메네스 ENACAL 신규투자 담당 국장은 “한국 기업은 가장 이상적인 협력 대상”이라고 평가했다. “상하수도 개량 30년 프로젝트를 벌이고 있는데 한국 기업이 들어온다면 좋은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오데브레시 스캔들’로 선두주자들이 타격을 받은 것도 기회다. 브라질 대형 건설업체 오데브레시는 2006년부터 2014년까지 중남미 각국 정관계에 33억7000만달러(약 3조7000억원)의 뇌물을 뿌린 것으로 드러나 검찰수사를 받고 있다. 다른 선두업체에도 불똥이 튀고 있다.

이런 가운데 내년 초 예정된 파나마 지하철 3호선 공사 입찰이 주목받는다. 23억달러 규모에 달하는 이 공사는 지하철 1, 2호선 시공사인 오데브레시의 수주가 유력시됐다. 그러나 스캔들 발생 이후 한국과 중국 간 대결구도로 바뀌었다. 한국에선 현대건설 등 3개 업체가 수주를 노리고 있다.

“민관 협력으로 개척해야”

페루 정부는 재정 여력이 부족해 민간자본으로 지하철 공사를 하고 있다. 페루 수도 리마에서 만난 설계·감리전문업체 도화엔지니어링의 정시성 부사장은 “중남미는 한국 업체에 큰 기회이면서 도전”이라고 말했다. 한국 업체들은 기술과 시공능력 등이 우수하지만 장기간 대규모 투자 리스크를 감내할 의지와 능력이 아직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정성원 해외건설협회 미주인프라협력센터장은 “한국 건설업체들의 중남미 시장 진출은 2014년 원자재 가격파동 이후 크게 줄어들었다”며 “민간과 정부가 함께 한국의 장점을 살리면서 장기적인 관점으로 시장을 하나씩 넓혀나가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마나과·리마=박수진 특파원 ps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