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기업이 세제개혁에 힘입어 내년 대대적으로 인수합병(M&A) 시장에 뛰어들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법인세 인하(35%→20%)뿐 아니라 해외 이익잉여금에 대한 세율도 14%대로 낮아져 두둑한 현금을 쥐게 될 기업들이 M&A에 돈을 퍼부을 것이란 관측이다. 호황을 누려온 미국 기업들이 M&A로 약점을 보완하고 신사업을 추가하면 경쟁력은 더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법인세 인하 효과… 미국 기업, 내년 M&A에 현금 3550억달러 퍼붓는다
◆해외에 남겨둔 1조4000억달러 들여와

경제매체 비즈니스인사이더에 따르면 올해 M&A 규모가 4년째 1조달러(약 1092조원)를 넘을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월스트리트는 내년에 더 많은 M&A가 이뤄질 것으로 보고 있다.

골드만삭스는 6일(현지시간) 투자자에게 보낸 메모에서 “2018년 M&A 관련 현금 거래(주식교환 등 제외)만 3550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올해보다 6% 증가한 수치다. 데이비드 코스틴 골드만삭스 미국주식전략 총괄은 “내년엔 세제 불확실성이 사라지고 경제에 대한 신뢰감이 커져 기업들의 M&A에 대한 인센티브가 증가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웰스파고도 내년 S&P500지수가 지금보다 5.5% 오를 것으로 전망하면서 그 이유 중 하나로 활발한 M&A를 들었다. 특히 기업들이 해외에 남겨둔 이익잉여금을 들여와 M&A에 쓸 것이라고 봤다. 상원이 지난 2일 통과시킨 세제개편안은 해외 이익잉여금(약 1조4000억달러)의 환류를 촉진하기 위해 이 돈을 들여올 때 매기는 세율을 현행 35%에서 14.5%로 인하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하원을 통과한 안은 이보다 낮은 14%로 돼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2520억달러의 해외 잉여금을 쌓아둔 애플이 이번 세제개편으로 470억달러를 아낄 것으로 분석했다. 돈을 갖고 들어올 때 기존 세율을 적용하면 786억달러의 세금을 내야 하지만, 14%가 적용되면 314억달러만 내면 되기 때문이다.

◆벌써부터 M&A 붐

세제개편이 가시화되면서 이런 분위기는 벌써 감지된다. 지난 3일 약국체인인 CVS헬스가 건강보험사 애트나를 690억달러에 사기로 했으며, 반도체 회사 브로드컴은 1050억달러를 들여 퀄컴에 대한 적대적 M&A를 추진하고 있다. 시장조사회사인 딜로직에 따르면 11월에만 2000억달러 규모의 딜이 발표됐거나 진행됐다. 이 회사가 1995년 조사를 시작한 이후 월간 기준으로 두 번째로 큰 규모다.

돈을 자사주 매입에 쓰는 기업도 늘고 있다. 홈디포는 이날 150억달러 자사주 매입 프로그램을 발표했다. 5일엔 뱅크오브아메리카(BoA)가 50억달러, 마스터카드는 40억달러를 자사주를 사는 데 쓰기로 했다.

세제개편으로 미국 기업의 채권 발행도 쉬워진다. 그동안 애플 등 해외에 돈을 쌓아둔 기업은 미국에서 돈이 필요할 때 채권을 발행해 썼다. 앞으로 이런 기업들이 풍부한 해외 자금을 가져와 쓰게 되면 채권 발행이 줄면서 금리가 내려갈 것이라는 관측이다.

◆‘아마존 공포’에 너도나도 M&A

내년 M&A가 늘어날 것으로 보는 또 다른 요인은 아마존 등 테크기업에 대한 공포다. 파괴적 신기술을 앞세워 전방위적으로 침입해 오는 아마존 구글 애플 페이스북 등에 대항하기 위해 신기술을 노리거나 기존 사업 모델을 강화하기 위한 M&A가 증가할 것이란 설명이다.

투자자문사 바드의 크리스 맥마흔 수석 글로벌M&A 전략가는 “아마존 등 테크기업이 다른 산업으로 급속히 확장하는 것을 우려하는 최고경영자(CEO)가 많다”며 “전략적 대안으로 M&A를 추진하는 곳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CVS의 애트나 인수가 대표적이다. 양사는 아마존의 헬스케어산업 진입을 앞두고 시너지를 내기 위해 전격적으로 M&A에 합의했다. 디즈니는 21세기폭스의 콘텐츠 사업 인수를 추진 중이다. 급성장하는 스트리밍 회사 넷플릭스를 견제하기 위한 것으로 분석된다.

타임워너와 합병을 추진 중인 AT&T의 랜들 스티븐슨 CEO는 “타임워너와의 M&A는 광고 시장에서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강한 지위를 구축한 페이스북과 구글을 막기 위한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밝히기도 했다.

뉴욕=김현석 특파원 realist@hankyung.com